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처럼 수영을 시작하다.

by 상수동해마

90년대 초, 캔사스

야외 수영장


미국의 시골 중 시골인 캔사스, 그리고 여름방학 초입인 6월. 이 시기에 이 곳에서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10세의 소년이 할 수 있는 활동이란 없었다. 머물던 숙소로부터 크게 벗어나지도 못하였고, 가끔 부모님과 인근 월마트, K마트에 식료품을 사러 간다던가 근처 다이닝 플레이스에 가는 것이 그나마 이벤트라면 이벤트였다. 가장 특별한 이벤트를 떠올려 보면, 그 당시 머물던 호텔에서 처음으로 미국인과 대화한 것 정도다. 상대는 매일 아침 침대를 정리하러 오던 10대 후반의 소년 알바생이었다.


여름방학 내내 매일 침대 시트를 갈고 정리하던 소년은, 부모님이 안 계신 어느 날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영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여 대꾸를 못하고 고개를 갸웃 거리던 나에게 그 알바생은 더 천천히 말을 하였다. 마치 더 천천히 말하면 알아들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듯.


미국에 온 이후 처음으로 외부인과 대화였기에, 나는 바로 부모님 방에서 붉은 표지의 두꺼운 사전을 찾아서 그에게 갖고 갔다. 그는 사전에서 어느 단어를 찾아 나에게 보여주며 나를 가리켰다. 사전에는 “일본인”이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 노! 코리안!


평생 본적도 만난 적도 없지만 어찌되었든 90년대의 교육을 받은 초등학생인 나는 즉각 부정했다. “아임 어 보이,” “유아 어 걸”은 들어봤어도, “알 유 재패니즈”는 들어본 적 없는 구문이었던 만큼 당황했다. 그 이후 수십년간, "알 유 재피니즈"라는 질문은 여러 차례 받았어도 단 한 번도 "아임 어 보이, 유아 어 걸"은 말할 기회가 없었다.


아무튼, 이렇게 소소하고 작은 변화들과 모험을 겪으며 마법사 오즈의 땅인 캔사스 생활에 조금 익숙해져갈 무렵 일상에 큰 변화가 생겼다. 어느 날 부모님이 동네에서 야외 수영장을 발견한 것이다. 그 후 매일 아침 9시, 나와 동생을 야외 수영장으로 데려갔다.


야외 풀장이라는 곳은 당시 내게는 상상 속의 장소로만 존재했다. 당시 한국에서 실물은 커녕 TV에서도 본 적이 없었던 곳이다. GDP 1만달러가 안되는 나라, 그것도 지방에서 살다가 처음으로 실물 야외 수영장을 보았을 때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현실이라고 믿겨지지 않았다. 지붕이 없는 수영장, 그래서 눈부시고 파아란 하늘이 있는 곳. 그 아래 말도 안되게 반짝이는 수영장. 선명하고 깨끗하고 시원한 물. 물장구를 치고 있는 사람들.


매일 매일이 디즈니랜드 같았다. 이런 그림 같은 곳에서 마음 껏 수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월화수목금토일, 내 기억에 적어도 한 달은 매일 아침에 가서 저녁 마감 시간때 까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수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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