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무서웠나요?
나만 무서웠나
구름한 점 없는 선명하게 파란 하늘. 그 하늘이 땅에 닿아 뿌리 내린 초록 나무들. 이러한 자연을 배경으로 눈앞에 펼쳐진 기형학적으로 반듯하게 설계된 수영장. 그 반듯함이 좋다. 안정감과 설레임을 동시에 준다. 이미 심장이 두근거린다. 투명한 물이 기다린다.
수영장을 둘러싼 시멘트 위를 달린다. 시멘트는 하얗게 달궈져 맨발을 빠른 속도로 쏘아댄다. 풀에 가까워지자, 수영장물이 튀어 진한 회색으로 변한 시멘트가 따뜻하게 발바닥을 감싼다. 그대로 점프해서 입수. 온몸을 차갑게 식혀주는 물.
그 뒤는 잘 기억 안난다. 물속을 버둥버둥 헤엄치고, 수영장 바깥으로 기어 나왔다가 다시 물 속으로 뛰어들고, 수영장 벽에 매달리고, 바닥으로 잠수하고 등등. 그 뒤에 기억 나는 것은 호루라기 소리였다. 모두 수영장에서 나와야 했다. 아쉬운 마음에 눈치를 보다가 모두가 나올 때 쯤 같이 나와서 호루라기 소리가 나는 곳을 보았다.
파란 하늘을 등지고 세워진 하얗고 높다란 철제 의자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하얀 셔츠, 빨간 반바지를 입은 청년이 무지개색 스포츠 선글라스를 껴고 호루라기를 불어 댔다. 갈색으로 적당히 익은 그의 팔뚝에는 금색 털이 반짝인다.
내 눈에는 그 모습이 퍽이나 근사해 보였다. 저러고 앉아서 돈을 받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저 무지개빛 선글라스는, 세상이 어떤 색으로 보이는 것일까? 마냥 신세계였다.
눈부신 수영장 다른 한 켠 끝에는, 다이빙 보드가 2개 설치 되어 있었다. 하나는 높게, 하나는 낮게 설치된 기다란 다이빙 보드에서는 이미 동네 꼬마들은 줄을 서서 뛰어 내리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서 줄을 섰다기보다, 안전상 이유로 다이빙 대에서 뛰어내린 후 물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었다. 호루라기를 갖고 있는 안전요원이 지켜보고 있을 때는 그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의 승낙이 떨어져야 뛸 수 있다. 말이 안 통해도 그 정도는 눈치껏 알 수 있었다.
나는 두근 거리는 마음을 붙들고 다이빙대 줄에 섰다. 앞 사람이 어떻게 이 기구를 올라가고 어떻게 뛰는지, 어떻게 올라오는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대부분은 후다닥 다이빙 대 위를 뛰어서 그 끝에서 뛰어 내렸다.
조바심을 내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디즈니 만화에서 본 것처럼, 다이빙대 위를 가볍게 달려, 날아올라, 다이빙 대 끝에서 점프를 하여 더 높게 뛰어 빙글 돌고 물속으로 퐁 들어가는 걸 상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세 걸음 정도 다이빙 대 위를 뛰다가 무서워서 멈췄다. 다이빙대는 미끄럼 방지를 위해 거칠었고, 천천히 걸어 그 끝에 서보자, 바깥에서 보던 것과 달리 상당히 높았다. 나는 결국 벌벌 떨다가 절벽에서 낙하해서 떨어지는 새끼 새처럼 뛰어내렸다.
중력이 일순 사라진 감각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높지 않았기에, 시원한 물이 뜨겁게 달궈지던 나의 피부를 금새 감싸 안았다. 생각보다 깊게 물 밑으로 빠진다. 나는 행복했다. 이토록 넉넉한 수영장이라니. 거대한 미국, 깊은 수영장 최고다 등의 감정에 빠져들었다.
나는 이내 낮은 다이빙 대에 익숙해져서, 옆의 높은 다이빙 대를 가늠해 보았다. 그렇게 용기 없이 가늠만 하고 낮은 다이빙대만 즐기던 어느 날, 동생이 뛰어내리는 꼴을 보았다. 비쩍 마른 검은 머리의 노란 동양인 꼬마가 저 높은 다이빙 대에서 뛰어내렸다.
한 달음에 높은 다이빙 대로 가서, 사다리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지금 밟고있는 계단이 이미 너무 높음을 깨달았다. 처음의 호기는 사라지고 오기로 계속 계단을 밟았지만 후회가 차올랐다. 맨 위로 오르자 너무나 무서운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캔사스는 인적이 적어 건물도 뜨문 뜨문 있을 뿐더러 높은 건물도 많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 벌벌 거리며 다이빙 대 위에 서자, 탁 트인 하늘 아래 나 혼자 서 있고 저 멀리 주변으로는 파란 나무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다시 아래를 내다보자 하늘색 수영장이 너무나 멀게 느껴졋다. 숨이 턱 막혔다. 뒤돌아서 내려가려다가 마음을 고쳐 먹고, 다시 한번 용기 내어 뛰어보기로 하였다. 내려가기 위해선 다이빙 대 위에서 뒤로 돌아야 하고 계단을 밟고 내려가야하는데, 그러기 위해 필요한 용기가 더 컸기 때문이다. 전진 밖에 없었다.
높은 다이빙 대 끝에 멈칫 멈칫 서자 다이빙대가 다소 흔들린다. 오금이 저리고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새끼 새처럼, 높이에 변화를 거의 주지 않고 다리에 힘이 빠진 채 다이빙 대에서 뛰어내렸다. 낮은 다이빙대처럼, 금방 괜찮아 지겠지, 곧 물속에 들어가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계속해서 떨어졌다. 아직도 떨어지고 있다니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발바닥이 수면에 닿는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하게 수면에 닿은 발바닥이 아팠다. 별이 보이고 정신이 없었다.
즐겁게 놀다가 기습적으로 명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나는 얼떨떨한 기분을 들고 수영장 밖으로 나와 아무렇지 않은 척 잠시 선베드에 누웠다. 저 위에 올라가서 놀다가 지금 아프다고 하면 혼날 것 같았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 누워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