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사스 수영팀에 가입한 이유

퍼즐이 맞춰진 순간

by 상수동해마


포트 레븐워스의 랜서스


몇 주간 혼자 동네 야외 수영장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놀이를 이미 다 즐기고 스멀 스멀 올라오는 지루함을 즐겁다는 자기 암시로 외면할 즈음이었다. 어느 날 아침, 수영장의 절반 정도의 넓이에 수영 레인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그곳에 붉은 수영모와 수경을 장착한 아이들이 수영을 하기 시작하였다. 통일된 붉은 수모를 쓰고 물살을 가르며 일렬로 거리 맞춰 빙글 빙글 나아간다. 범접할 수 없는 물을 가로지르는 동작에, 물 속에서 그들을 훔쳐 보기도 하고, 바깥에 앉아서 구경을 하기도 하였다. 가끔은 레인 없는 공간에서 그들이 하는 것을 흉내내기도 하였다. 슬그머니 그리고 은근히 사람이 없는 곳에서 그들의 동작을 흉내내었다.


그러기를 며칠, 이러한 어필이 눈에 띈 것인지, 어느 날 아침 엄마는 나를 다른 수영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은 천장이 낮은 1층 건물로, 철과 유리로 된 무거운 문을 밀고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공기가 두껍다고 느껴질 정도로 습도 높은 수영장 냄새가 몸을 덮었다. 실내의 한 쪽 벽면에 유리창이 있었는데, 유리창을 내려다보면 지하 1층 정도의 위치에 노란 조명을 받는 갈색 타일의 수영장이 있었다. 다른 벽면들에는 여러 포스터들이 붙어있었고, 밝고 선명한 색의 포스터가 많았다. 대부분의 포스터에는 해마와 해마를 탄 기사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재미있고 멋진 그림이라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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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 쪽으로 더 들어가 코너를 돌면 짙은 남색 벽의 탈의실이 있었다. 미국 하이틴 영화 속의 운동부 탈의실처럼 기다란 벤치 의자들과 새로로 긴 오래된 철제 캐비넷들이 즐비해있었다. 캐비넷을 지나쳐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계단이 나타나는데, 이 계단을 내려가면 널찍하고 어두운 샤워실이 나오고, 이 샤워실을 지나쳐서 보이는 계단을 내려오면 지하 수영장이 나왔다.


수영장의 천장에는 밝은 노란 조명이 설치 되어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영장에 노란 조명 이란 것도 특이하지만, 더 특이한 것은 수영장 벽이 고동색이 도는 타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기억에 그 수영장은 전반적으로 갈색, 노란 색 빛이 강하게 도는 실내 수영장이었다. 일반적인 수영장 색감은 파란색, 흰색, 하늘색이며, 이런 노란색 - 고동색 색감의 수영장은 이 후에도 본 못 보았다. 굳이 떠올려보자면 오래된 유럽의, 전쟁 시설 목욕탕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 수영장에는 데비가 서 있었다.




데비


데비는 건강하게 통통한 체형에, 작은 키, 검은 웨이브 머리, 짙은 갈색 피부에 커다란 검은 눈, 샐쭉한 표정으로 진한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삐쭉 삐쭉 내미는 사람이었다. 검은 색 머리가 많지 않았던 캔사스에서 나는 데비에게 안도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정말 검은 머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음엔 혹시 한국인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의문도 가져보았지만 전혀 아니다. 당시엔 몰랐지만, 데비는 하와이 사람이다.


키가 작은 그녀는 짧은 청 반바지를 입고 맨발로 수영장에 서서, 큰 눈을 더 크게 희번뜩거리며 뜨고, 큰 목소리로 영법 이름과 미터를 외쳤다. 출발 신호와 함께 아이들이 수영을 하면, 풀 주변을 빙글 빙글 돌며 아이들의 자세를 봐주었다. 가끔은 물 바깥에서 수영 자세를 열정적인 몸동작으로 표현해주었다. 물론 나는 수영장 위쪽에서 데비가 지르는 소리를 전혀 이해를 못하였지만,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물속에서 위를 올려다보고 데비의 몸동작을 보며 항상 열정적으로 끄덕이며 수영에 임하였다. 앞의 사람이 출발하면 출발하고 멈추면 같이 멈추고.


그렇게 열심히 앞사람 발바닥을 쫓아 진한 갈색 타일의 수영장 속을 빙글빙글 돌던 어느 순간 갑자기 등 위에 기분 좋은 시원함이 짜릿하게 퍼져갔다. 몇 초간 느껴지는 시원함은 금새 사라져,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으나, 계속해서 반복해서 느껴지자 그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수영을 잠시 멈추고 물 밖으로 고개를 들고 두리번 거렸다. 그때 얼굴에 시원한 물이 쏟아졌다. 노란 조명 아래, 여전히 샐쭉한 표정의 데비가 입을 삐죽 내민 채 호스로 찬물을 뿌려주고 있었다. 내가 멈춰서서 데비를 쳐다보고 있자 호수 입구 끝을 눌러 내 머리 위로 다시 물을 길고 가늘게 뿌려주었고 시원한 물이 얼굴을 식혀주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데비가 봉사 활동 지원자 같은 것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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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비가 수영팀의 코치였다는 것은 꽤나 뒤에 깨닫게 된 사실이다. 그리고 이곳은 수영 학원이 아닌, 수영팀이라는 것 역시 비슷한 시기에 깨닫게 되었다. 한국에선 학원만 다녔었기에, 팀에 대한 개념이 생소하여 내가 팀에 등록되었다는 사실을 늦게 깨달았다. 소속감을 갖고, 같은 팀원을 응원하고, 경쟁 하고, 함께 대회도 나가고. 그리고 팀에는 팀명과 로고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로비에서 지나가면서 매일 보던 포스터의 해마와 해마에 탄 기사라는 것도, 그리고 영어로 적혀있던 "Lancers"가 팀명이라는 것도, Lancers의 뜻이 창기병이라는 것도, 창기병이 원래 말을 타기에 해마를 탄다는 것 등 모든 것이 아하! 하면서 깨달음으로 온 것은 꽤나 뒤의 시기였다.


깨달음 이전 까지는 이러한 현상들과 정보, 이름이 모두 나에게 유기적 체계나 의미가 아닌, 미국이라는 나라의 예쁘고 신기한 현황과 스타일의 나열로만 인식되었기에 갑자기 깨닫게 되어 파편들이 퍼즐처럼 모두 모여진 순간 입에서 절로 "아~!" 하면 탄성이 절로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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