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편견이랍니다.
데비에게는 남편이 있다. 미스터 W다.
짧은 머리, 짧은 키, 볼록하고 단단하게 나온 배, 다부진 몸, 무미 건조한 스타일의 안경, 부리부리하고 진지한 눈. 그리고 반바지 밑으로 드러난 단단하고 두꺼운 종아리. 그는 늦가을까지 짧은 반바지를 즐겨 입었다. 날씨가 추워져서 긴팔 스웨터를 입게 되어도 반바지는 그대로 고수하였다. US ARMY 로고가 붙은 스웨터를 즐겨 입었기에 그를 미군 출신으로 알고 있었다. 기억 속에 어쩐지 소령이라는 이미지다. 실제 소령이었던 것 같다.
그의 부리부리한 눈과 커다란 코, 카랑카랑하게 채찍처럼 때리는 어조 때문에 영어를 못 하던 시기엔 그가 불편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인상과 달리, 그는 꽤 친절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는 주로 중급반과 상급반을 코칭을 하지만, 대회를 앞둔 시기면 초급반도 신경을 써주었다. 이미 수영팀에 등록한지 6개월 정도 지나 말을 어느 정도 알아 들을 수 있을 무렵,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다이빙 대 위에서 자세를 잡고 있는 나에게 그는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일본인이 있다. 지금 이곳에, 바로 너의 옆에.
US ARMY 스웨터를 입은 미스터 W는, 내가 알아듣기 쉬운 단어로, 또박또박 천천히 말하였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일본인이 어디에 있지? 이 중 누가 일본인이지? 이 수영장에서 아시아인이라고는 나 밖에 없는데. 혹시 나 말인가? 나는 한국인인데. 아 혹시 저기 갈색 머리 혼혈로 보이는 아이가 일본인인가?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수경 너머로 그의 진중하고 엄숙한 얼굴을 바라 보며 그에게 천천히 끄덕였다. 그런 나를 보며 그는 다시 한번 힘 주어, 카랑카랑하게 끊어 말했다.
이해하겠나? 바로 너 옆 자리에 일본인이 있단 말이다. 어찌할 것인가?
무슨 답을 해야할 지 모르던 나는, 다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열기가 느껴진다. 그의 얼굴을 본 나는 다시 비장하게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그는 왜 이러는 것인가.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미군인 그는, 한국인인 내가 당연히 일본인들을 미워할 거라 짐작하여 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캔사스의 백인 아이들 무리에 섞여 생활하다 보면, 내가 영어를 잘 못하더라도 일단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가끔 잊곤 했다. 겨우 6개월만에 수영장 탈의실의 거울에서 검은 머리의 동양인 통통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에 가끔 놀라기도 했다. 피부가 왜 저리 노란고? 저게 나란 말인가?
잠시 생각에 젖어있던 내 귀에 다시 그의 모티베이션 스피치가 들려왔다.
너는 이길 것이다. 지금 점프하고 킥을 하고 풀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길 것이다. 저기 저 일본인한테 지지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발차기를 할 것이다. 기억해라.
나는 정말이지 별 감정이 없었다. 오히려 어떻게 반응해야할 지 몰라 그냥 머뭇 머뭇 거리던 중
고!
그의 신호와 함께 뛰어 들었다. 몸 안에 분노를 일으켜 보았다. 분노의 에너지를 발로 밀어 넣어 보았다. 몸을 흔들었다. 어깨를 돌렸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런 분노도 에너지도 없었다. 당시 나는 어떤 분노를 갖기엔 맥도날드처럼 매일 매일이 인스턴트하게 가벼운 행복함으로 가득찬 시골 초등학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