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수영장의 빈센트 (2)
어느 저녁, 빈센트가 자신의 자택으로 저녁 초대를 하였다.
빈센트가 알려준 주소로 자전거를 타고 갔다. 며칠 전,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여러 대화를 나눴고, 내가 그의 면접을 통과하였듯이 그 역시 나의 “정상인인지 확인하는 맥주 면접”에서 통과하였기에 그의 초대를 기쁘게 받아들였지만, 혹시 몰라 당시 함께 쉐어하우스를 사용하던 인도인에게 내가 갈 곳 주소를 공유하였다. 그가 한니발 렉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었다.
그가 알려준 주소는 의외로 굉장히 찾기 쉬운 곳이었다. 정확히 맥주를 마셨던 곳과 수영장 사이의 어느 레바논 식당 건물의 위층에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긴장한 상태로 그의 집에 갔다. 그가 알려준 비번을 눌러 1차 문을 통과후, 건물 1층에서 다이얼 번호 대신 CROQ를 누르고 벨을 눌렀다. 문이 열렸다. 번호 호수 대신에 이렇게 특정 문자로 벨을 누르게 하는 시스템은, 아무나 초인종을 못 누르게 하는 시스템인것 같았다. 정확한 문자열을 모르면 초인종 조차 누를 수 없는 시스템은 좋은 시스템이라 생각하몀 나는 이마를 탁 치고서 들어가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6층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 가니 A64라고 적힌 문이 있고 그가 문을 노크후 들어가니 그가 맞이해주었다. 집에서는 따뜻한 노란 빛이 흘러 나왔다.
빈센트의 집은, 프랑스 만화에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집안에 빼곡히 물건이 있었고, 다소 좁았지만 잘 정리가 되어있었다. 좁은 코너를 돌면 새로운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는 ㄷ자로 구성된 부엌에서 바쁘게 요리를 하고 있었다. 동네 시장에서 사왔다며 무엇인가를 요리하고 있었고, 바쁘게 냉장고를 열어서 무엇인가를 꺼냈는데, 그 헝겊을 풀었더니 안에서 고기 재료가 나왔다. 다행이 한니발 렉터는 아닌 것 같아 마음을 놓고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떼굴떼굴 굴렸다. 그는 웃으며 거실의 탁자에 앉으라고 안내해주었고, 나는 그 곳에 앉았다. 금방 요리가 끝나고 그는 와인과 요리를 갖고 왔다. 그리고 이 타이밍에 맞춰 집안 어디선가 그의 와이프도 걸어나와 퉁명스러운 얼굴로 인사를 하고 함께 앉았다.
셋이 모여서 식사를 시작하였다. 열정적으로 재미있게 떠드는 그와 대조적으로 그의 와이프는 눈을 반쯤 감은채 지루한 표정으로 앉았다. 빈센트는 다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기 시작하였다. 자신은 최근에 은퇴하였고, 금융기관의 IT 부서에서 근로하였으며, 그의 막내 아들이 해외에서 와인 관련 영업을 하고 있는데 나와 또래이며, 그 아들은 한국에도 출장에 자주 다니며, 자신의 딸은 아랍 문화와 역사를 전공 하였으며 그 딸은 이제 겨우 20대 후반이지만 어릴 적부터 자랑스러웠던 딸임을 말하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자식 자랑 형태는 만국 공통이군, 파리 사람도 똑같군, 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잠자코 들었다. 그는 다시 화제를 전환하며 수영과 음악, 하모니카 연주, 밴드활동, 그리고 인근 동네 시장에서 장을 봐서 요리를 하는 것과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아프리카 문화재를 모으는 것에 관심이 있음을 말하였다. 매끄럽게 다양한 화제를 전환하며 대화를 계속 이끌었다.
그는 자신이 동네 친구들과 모임을 즐기며, 얼마 전 자신과 오래 알던 지기가 세상을 떠났다고 말하였다. 굉장히 슬펐고 많은 친구 무리들이 모였다고 잠시 회상을 하던 그는 계속해서 그는 집안의 수많은 CD 콜렉션을 보여주며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대화를 이어가기도 하다가, 미국 여행에서 안 좋았던 경험을 털어 놓았다. 미개한 미국인들의 미개한 장난으로 인해 해변가에서 자신의 다리가 부러졌는데 결국은 범인을 잡지 못 하였다고 말하였다.
또한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 이름이 원래는 “입실론” 이여야하지만, “오미크론”으로 바뀐 것에 대해서 부당함을 표하였다. 그는 “입실론”의 “시”가 “시진핑”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오미크론으로 바꿨는데, 이는 프랑스 대통령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데, 어떤 음모가 있을 것 같다고 제안하였다. 분명 자본 때문일 것이라고 그는 확신하였다.
이러한 그의 다양한 화제를 반영하듯, 그의 집안은 식탁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간이 그의 관심사와 역사로 빼곡했다. 아프리카에서 구매했다는 문화재, 이젠 더 이상 구매할 수 없다는 어떤 짐승의 잔재, 아랍계 문화재, 와인, 빼곡한 음악 CD, 그외 알 수 없는 잡동사니. 부엌 역시 온갖 잡동사니와 물건들로 굉장히 빼곡하였던 점이 “과연 프랑스인답군” 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특히 계속해서 와인과 와인에 곁들여 먹는 음식이 부엌 곳곳의 수납장으로부터 나왔다. 프랑스인에 대해 갖고 있던 나의 스테레오 타입 편견을 훌륭하게 채워주었다.
실제로 그 날 저녁 그가 나에게 준 와인은, 내가 음미해 본 모든 와인 중 가장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그 와인 자체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갖고 나온 와인은 대부분 이미 코르크가 뽑혀 중간에 마시다가 말은 와인으로, 고무 마개 같은 것들로 막혀있던 것들이다. 아니, 어쩌면 좋은 와인이어서 아껴 먹었었던 와인이고 그래서 고무 마개 같은 걸로 막혀있었던 것일까? 나는 잘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그 와인이 좋았던 이유는 와인을 즐길 줄 아는 사람과 함께 즐긴다는 기분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치즈, 혹은 푸에, 혹은 그날 저녁 그가 로컬 마켓에서 공수해온 재료로 요리했다는 음식 덕분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처음으로 와인이 좋은 술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미 와인이 좋은 술임을 알고 있었던 분들게 심심한 공감을 표한다.
그는 와이엔 대한 사랑과 지식을 늘어놓으며 동시에 중간 중간 일어나서 무엇인 가를 가져왔다. 구석 구석에 헝겊따위로 말아 두었던 소시지, 치즈 등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조금 길게 자리를 비운 그는 잠시 방으로 들어가더니, 자랑스레 두꺼운 책을 들고 왔다. 와인 관련 두꺼운 사전을 들고와 보여주었다. 와인과 관련된 주제에 대해 만반의 대화를 할 준비가 된 그에게, 나는 정말 와인에 대해서는 거지 이하의 무지한 인간임을 재차 고백해야 했다.
나는 원래도 주량이 약했지만 분위기 때문인지 더욱 취해, 그가 다시 미국 해변가에서 다리가 부러진 얘기를 할 때 즈음 이미 수마와 사투를 버리고 있었다. 1차, 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군과 러시아, 동서 양쪽 군사를 막아내기 위해 사투를 버리던 독일 진영처럼, 점차 좁혀오는 수마의 전선을 사수하며 버티던 중, 다행이도 그의 화제가 파리의 현황으로 옮겨갔다.
그는 최근 파리에 여러 문제가 있으며, 그 중 하나가 일하는 사람들의 게으름과 무기력이라고 짚었다. 공영 시설 - 특히 수영장 직원들이 무능하고 게으르며 일하기 싫어한다는 문제점을 안타까워하였다. 그러면서,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날, 수영장 직원이 카드 취소도 못하였던 해프닝도 사실 놀랍지 않다고 하였다. 그는 사회 전반에 있어 파리에서 게으름과 무능이 많아져 간단한 것도 되지 않는다며 한탄하였다.
솔직하게 말해서 보통 저러한 사회 문제에 대한 불평의 토로는 나의 몫이자, 나의 역할이다. 보통이라면 나 역시 공감하였을테지만, 이렇게 빈센트가 한탄을 하는 것을 듣는 동안, 나의 마음은 의외로 굉장히 평온하였다. 대신, 이 도시의 이방인인 나는 환하게 웃으며,
- 바로 그 점이 파리의 대단한 점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에서 모두가 어우러져 살아간다. 그러한 게으름 부분까지 포용하며 나아간다. 그러한 포용력은 쉽지 않을것으로 생각되어, 인간 사회로서 파리가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그러한 게으름까지 포용하기 힘든 사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 마음에 여유를 갖고 말하였다.
빈센트는 잠시 벙찐 표정으로 나늘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와이프를 돌아보았다. 와이프는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와인을 마시며, 그의 시선을 반환하였다. 이내 그는 새삼스러운 표정을 나에게 지으며, 그러한 관점으로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말하며, 괜찮은 것 같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와인을 한 잔 들이키고는 다시 끄덕이며, 그런 생각도 괜찮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하였다.
사실 이 부분은, 빈센트만큼이나 나 스스로도 굉장히 놀란 부분이다. 빈센트와 같이 따뜻하고, 이방인에게 관심을 갖고, 오랜 친구를 사랑할줄 알고, 술과 음악을 즐기는 사람 마저 참기 힘들어하는 불편한 점에 대해서, 내가 관대하고 여유롭게 생각하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심지어 그 불편을 내가 직접 겪었는데 말이다. 그 외에도 정말 불편한 점이 많았다. 예를 들면 티케팅. 서울에서는 이미 교통카드로 넘어간지 한참인데 아직도 90년대 같은 종이 티켓을 사용하는 것도 이상한데, 이 티켓을 판매하는 역무원이 있다는 것도 이상하고, 그 역무원이 굉장한 잔소리꾼이라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카페. 불어 좀 못 한다고 카페에서 강한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시내에서 택시를 타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속도보다 더 느릴 경우가 많았으며, 택시 기사는 되려 나에게 알 수 없는 말로 툴툴 거렸다. 내가 머무는 숙소 관리자는 게을렀으면 연락이 되지 않고, 고장난 부분에 대해서는 내 돈으로 수리할 것을 충고하였다.
굉장히 짧은 기간에 다양한 일이 발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닥 - 내 기억에는 전혀 -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한국이었다면, 당연히 내가 인상을 찌푸릴 일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즐거웠다. 아마 내가 이 곳의 이방인이기에, 그리고 언젠가, 혹은 곧, 이 곳을 떠날 것이기에 이 곳의 문제점을 현실이 아닌, 벽화, 혹은 차창 밖의 풍경처럼 받아들였기 때문인것 같다.
어쩌면 이는 여행자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인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