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을 힘도 없어요.
핀수영 동아리에 가입한 지 3개월 정도 되었던 대학교 2학년 때의 여름.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여름은 내 인생에서 특별한 여름이었다.
여름방학 동안 2주간 인근 체육고등학교에서 훈련할 인원을 선발한다고 동아리 훈련부장이 공지하였다. 동아리 연례 행사처럼 자리 잡은 이 훈련 이벤트에 갈 수 있는 총 인원은 택시 한 대에 딱 탈 수 있는 4명. 그리고 그 중 1 명은 훈련 부장이었기에 실제 선발 인원은 3명이었다.
체육 고등학교 훈련에 대해 공지하자 동아리 선배들은 입을 모아 떠들었다. 작년에는 누가 갔다 왔네, 그 전년도에는 누가 갔다 왔네. 나는 가지 못 하였지만 갔다 오면 굉장히 특별할 것이네, 누구 누구는 훈련 중간에 도망쳤네. 그들만 아는 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선배들의 서사에 조금 고무 되기도하고, 체육고등학교라는 전혀 인연이 없던 장소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신입생들의 호승심을 가장 자극 한 것은 선발 기준이 데스 매치라는 점이었다. 이것은 근성 싸움이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딜가나 이러한 “근성” 싸움에 유난히 놀라운 투지력을 보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연신 “데스 매치”라고 반복해서 말하며, 반복할 때마다 다시 열정과 투지로 스스로를 달궜다.
실제로 옆에서 보기에 정말 놀라운 근성을 발휘하였다. 결과적으로, 어릴 적부터 수영을 해서 유리하였던 나를 제외하고 선발된 나머지 2명은 근성 그 자체인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이정도 멤버면 괜찮지 않을까.
그 다음 주의 월요일. 무더운 여름 아침 일찍, 훈련부장과 근성 2명, 그리고 나까지 포함한 4명은 택시를 타고 체육고등학교로 출발하였다. 택시 안에서 서로 끈적인다느니, 땀냄새 난다느니, 좀 떨어져 앉으라느니 시끄러웠다. 그렇게 한참을 갔다.
여름의 고등학교는 생각보다 한산하였다. 우리는 모노핀 장비를 어깨에 걸치고 수영가방을 맨 상태로 도착하였다. 인솔자 역할을 하는 1년 선배가 코치님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나는 곁눈질로 수영장 시설을 훑었다. 50미터 길이의 수영장 시설은 굉장히 깨끗하고 현대적이었다.
나와 나이 차이 별로 안 나 보이는 학생들부터 앳되보이는 학생들까지, 집중하여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프로를 지망하는 훈련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한 명 한 명이 날카롭게 느껴졌다. 이제 막 공식 성인이 되어 여유롭게 어슬렁 걷던 나는 그 모습에 조금 움츠리고, 조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중에 실제로 대화를 해보니 그들은 그냥 순하고 착한 학생들이었다.) 그리고 훈련이 시작되었다.
이미 대부분의 학생들은 몸을 풀고 입수한 상태였다. 수면 위로 드러난 어깨와 팔은 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수영모와 수경이 뒤덮은 얼굴 표정은 진중하였다. 물살을 가로지르며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에너지와 젊음을 보며 나는 긴장하며 입수하였다. 물은 차고 깊고 맑았다. 두근 거렸다.
우리 4명은 각자 다른 레인에 배정을 받았는데, 생각해보면 꼴찌 4명을 한 곳에 넣으면 훈련에 지장이 생길 것이니 당연하다. 레인당 3-4명 정도가 있었는데, 나는 내가 배정 받은 레인 맨 뒤로 조용히 가서 섰다. 이제 나도 출발. 그 뒤로는 정말 그냥 열심히 수영을 했다는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핀수영을 하고, 아주 천천히 수영을 하며 발을 풀어주고, 다시 핀수영을 하고.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앞사람으로부터 뒤쳐지지 않기 위해 위해 최선을 다했다. 조금이라도 눈 앞에서 핀수영 자취와 물 방울이 멀어져 가면, 훈련에 폐를 안 끼치기 위해 더욱 열심히 킥을 하였다. 거친 호흡으로, 스노클 표면도 꽤나 달아 올랐다. 자존감이든 자존심이든 근성이든 무엇이든 간에 태울 수 있는 것은 다 태우며 쫓아갔다.
몸 안의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가서 몸이 두부처럼 연해지고 둔해졌다고 느껴질 즈음,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오전 훈련이 끝났다. 학생들은 조금 쉬었다가 오후부터 근력 훈련이다 스트레칭이다 뭐다 진행한다고 한다. 우리는 훈련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해주신 코치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 4인 모두 다른 레인에서 훈련을 하였기에 서로 어떻게 훈련을 하였는지는 모르지만, 혼이 조금 빠져나간 몰골로 엉거주춤 코치님에게 감사 인사드리는 모습으로 보아 다들 최선을 다한 것은 분명하였다.
뜨거운 여름 햇빛이 쏟아지는 교내, 터벅 터벅 가로지르고 큰 나무들을 지나 찻 길을 향해 걸었다. 뜨거운 공기 사이 여름 풀 내음이 폴폴. 4명 모두 말 없이 걸었다. 여전히 영혼이 제자리를 찾지 못 한듯 퀭한 몰골이다.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입도 벙긋 안하고, 조용히 택시를 탔다. 그리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 모두 혼절하였다.
택시가 멈추고 하나 둘 씩 서로 늘어지고 구겨진 몸을 밀쳐내며 택시에서 내렸다. 천천히 구내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다행이 점심시간 마감 직전에 도착하였다. 식판 트레이에 음식을 대충 담은후, 다 같이 카페테리아 테이블에 앉았다. 훈련 부장, 근성 2인, 그리고 나. 아무도 식사를 시작하지 않은 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식판 트레이를 쳐다만 보았다. 정적 속에 4인 모두 식판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뇌 활동이 멈춘 것처럼 - 이것은 음식이다, 먹는 것이다, 맛있겠다 따위의 생각 대신 - 백지 같은 평화로운 공허함이 자리 잡았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머리를 이고 가만히 있던 나의 귀에, 침묵을 깨고 침음하듯 근성 2인조 중 한 명이 힘없이 읊조리는 말이 들렸다.
- 밥 숟가락도 못 들겠어.
옆에서 바람 빠지는 풍선 소리처럼, 힘없이 흐흐흐 웃는 소리가 4명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 우리 앞에 있던 맨 뒤에서 가던 애들. 우리랑 핀 수영 시작한지 얼마 차이 안난대.
- 고등학생 1학년이래.
- 형 앞에서 티셔츠 입은 채로 하던 애는 여학생이야.
- 웃을 힘도 없어.
몸이 들썩 들썩, 다들 낄낄낄 웃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