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보다 더 타인
찰리가 제왕 절개를 위해 분만 수술실로 내려간 뒤, 나는 입원실에 홀로 앉아서 기다렸다. 조용한 입원실.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수술을 집도할 의사의 전화다. 의사는 나에게 아기의 제대혈을 보관할 것인지 물으셨다. 나는 보관하겠다, 연락주셔서 감사하다고 답하였다. 의사는 알았다, 수술은 금방 끝날 것이라고 하였다. 전화를 끊고, 카메라 챙기고 짐 정리하고 신생아실로 내려갈 채비를 하였다.
방문에서 작은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일본 전통 인형처럼 짧은 단발 머리와 병원 직원처럼 보이는 파스텔 톤의 제복, 쌍꺼풀 없는 커다란 눈에는 색이 바랜 것 같은 힘 없이 옅은 갈색 눈동자, 세월의 흔적을 숨기지 못하는 가느다란 입술과 입가의 주름, 하얀 화장으로 더 창백해 보여 멜라닌 색소가 부족해 보이는 조그마한 여자가 입원실 문을 빼꼼히 열며 긴장한 듯 힘주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인사를 건네왔다.
제대혈 때문에 왔다고 조심스레 말을 건네며, 색 바랜 갈색 눈동자로 나를 재단한다. 방금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아 내용을 알고 있다고 대답하자, 끄덕이며 빠르게 곁으로 다가왔다. 계산기 태엽이 감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빠르게 카탈로그를 꺼내고 그보다 더 빠르게 영업 텐션을 끌어 올렸다. 목을 가다듬고 시동을 걸었다.
- 한 시가 급하다, 출산하기 전까지 해야 하므로 지금 결정해야 한다, 냉장 보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의료 폐기물로 버려진다.
조곤조곤 채근한다.
- 나 역시 이 상품을 가입했다, 나의 딸이 내게 고마워한다, 아까 전화한 담당 의사도 가입했다, 그 당시에는 프리미엄이 없는데 이 프리미엄 상품은 굉장히 좋다, 프리미엄 상품이 비싸다고 생각되면 일반 상품도 나쁘지 않다.
제대혈과 관련된 이것이 사실상 보험 상품과 유사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기와의 첫 만남 시간이 임박해 왔기에 더 시간을 허비할 수 없어 프리미엄으로 선택을 하겠다고 하였다. 팽팽하게 돌아가던 영업 텐션과 계산기 태엽은 정오를 맞은 시계처럼 탁하고 부드럽고 풀렸다. 그렇게 마법처럼, 입으로 설득하는 판타스틱 랜드의 동화 같이 아름다운 스토리 텔링 시간이 끝나자 바로 법적으로 동의 하는 현실 시간이 시작되었다. 짧은 시간 동안 긴 서류에 서명을 채워가던 중, 시간이 없으니 나중에 이어 하겠노라 밝히자, 동의를 출산 전에 마무리 해야 한다며 다시 나를 재촉하였다. 신데렐라는 유리 구두가 벗겨진 상태로라도 계속 뛸 수라도 있지, 이 태블릿 기기의 문서는 빠트린 부분이 있으면 다시 작성해줄 것을 놓침없이 요청하였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전기 포트에 세팅된 물처럼 예정된 끓는 점을 향해 감정이 점점 끓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손이 더 신경질적이고 빠르게 움직였다. 상담사의 동그랗고 커다란 눈은 무엇에 거슬릴까 최대한 보조를 맞추었다. 그리고 그 긴장의 순간, 전화가 울렸다.
-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지금 신상아실로 오셔요.
그 순간, 키 작고 마르고 창백한 상담사의 커다란 두 눈이 나의 얼굴을 올려다 보며 나직이 말하였다.
- 이 순간을 함께해서, 영광입니다.
타인보다 더 타인인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보낸다. 태블릿에 마지막 동의를 서명하고, 그녀에게 결제는 나중에 하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카메라를 들고 계단을 뛰어서 신생아실 쪽으로 갔다. 휘리릭 계단 두 세개씩 뛰어내려가서 신생아실 앞의 복도에서 두리번 거리는데, 복도 한 켠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