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샤워실은 넓은 편
현재 이 수영장에 온 지 6년 정도 되었다. 오래 다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말하기엔 고인물 선배님 중 20년 넘게 다니신 분들이 수두룩 하다. 특히 새벽 강습반의 경우, 멤버에 변화가 없는 편이다. 내가 다닌 6년간 떠난 멤버보다 떠나지 않은 멤버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다보니 샤워실은 자연스레 활기를 띈다. 출근 직전 시간인만큼 다들 바쁘고 서두르는 와중에도 친목 대화를 나눈다. 샤워실에는 샤워벽들이 창자 융모처럼 세워져 있어 샤워 공간 효율이 극대화 되었으며, 덕분에 샤워하며 대화하기에도 편한 구조다. 물오리들처럼, 삼삼오오 모여서 몸 구석 구석 물로 씻으며 활기차게 일상 이야기를 나눈다.
- 아기 잘 크고 있지?
- 안녕하세요! 네.
- 이제부터가 진짜 힘든거지. 어른이지. 아기가 생겨야 어른이지.
- 하하하하하하하 네
- 자네가 몇 살이라고 했지?
- 마흔 넘었습니다.
- 요즘 다 그렇게 늦는다매? 왜 그런거야?
- 살기 좋아져서 그렇습니다.
나의 대답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신 이 분은 굉장히 잘 생기신 실버 연령의 분으로, 단정한 회색머리, 정리된 콧수염, 그리고 깔끔한 옷차림이 인상적이신 분이다. 지난 6년간 지켜 보았을 때, 만나는 사람마다 "와 너무 잘생기셨어요" 라고 말하면 무심하게 끄덕끄덕 동의하신다. 너무 많이 들어서 별다른 감흥이 없으신 것 같다. 나이도 동년배보다 15년 이상은 젊어보여서, 그 선배님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어른들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볼 때서야 나이를 체감하게 된다.
- 아기 많이 컸죠?
- 안녕하세요. 네 이제 100일 지났네요
- 이제 곧 뒤집고 배밀이 하고 그러겠네요
- 그렇다면서요. 그 때는 어떤가요?
- 사실 잘 기억 안나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그냥 막 ... 잘 기억이 안나요.
개구진 표정으로 해맑게 헤헤 웃으시는 이 분은 나의 동년배다. 어느 날 수영장에 아들과 함께 온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아들도 똑같이 개구쟁이 표정을 짓고 있었다.
- 혹시 5키로 수영 대회 관심없으세요?
- 저는 대회는 안 나가요.
새침하게 대답하는 이 젊은 긴머리 청년과 아침 인사한 횟수만 적어도 1,000번은 될 것 같다. 지난 6년간 두어 마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진 않는다.
오랜 세월과 함께 자리 잡은 커뮤니티에서는, 각잡거나 날세움도 없고, 걱정도 없이 그냥 편안하게 툭툭 대화가 진행된다.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거나 파벌이 있지도 않으며, 새로운 사람도 꽤 반갑게 맞이해주는 편이라 생각한다.
사실 커뮤니티라고 해도, 이것은 나 혼자 일방적으로 지칭한 것이다. 이곳에 명칭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동호회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간 역사와 친밀함으로 하나의 커뮤니티처럼 보이는 것이다. 수영이 끝나고 시간이 맞는 사람끼리는 매일 커피 한 잔 1시간씩 하기도 하고, 사우나에서도 20-30분씩 대화를 한다. 만약 인근에 아침 밥을 맛있게 하는 식당이 있으면 다들 단골들이 되었을 것이다.
수영장에는 "통돌이"라고 불리는 탈수기가 있다. 넣고 돌리면 수영복의 물이 빠지는데, 강습이 끝나고 한 꺼번에 나가는 인원이 많을 때 이 통돌이 앞에 긴 줄이 형성 되기도 한다.
사실, 굳이 유형으로 나누자면, 나는 수영복을 통돌이에 혼자 넣고 혼자 돌리는 사람이다. 통돌이 차례까지 오래 기다려야해도, 앞사람이 함께 돌리자고 해도 혼자 돌리는 편이다. 너무 오래 기다려야할 경우에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돌리기보다는 그냥 대충 손으로 짜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커뮤니티에서 많은 분들은 함께 통돌이 탈수기에 넣는다. 잘 모르는 사람이어도, 아 여기 같이 넣으셔도 괜찮아요, 라고 적극적으로 말을 건넨다. 뿐만 아니라, 바쁜 출근 시간대에 어느 친절한 선배님은 다른 회원들에게 돌아다니며, 함께 돌리겠냐고 묻고 수거해서 통돌이에 넣고 물기 제거 후 하나 하나 찾아가 돌려주신다. 처음에는 이 친절에 깜짝 놀랐다.
또 하나 깜짝 놀란 일 중 하나는, 샤워 중 서로 등밀이도 해주는 것이었다. 어느 날, 거대한 신형 털장갑에 거품을 만들고, 손에 끼고서는, 수술 집도 전의 의사처럼 손을 세워 들었다. 그러고는 바로 서로 쓱싹쓱싹 등을 밀어준다. 마무리로, 탈의실 거울 앞에서 서로 등에 바디로션도 발라 준다. 쓱싹쓱싹. 거침 없이 빠르고 투박하고 쿨하게 쓱싹 끝내버린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발생하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일이다. 내게도 등밀이와 등바디로션이 어느 날 갑작스럽게 들어왔다. 앗 하고 거리를 두기 전에 이미 쓱싹 끝났고, 그와 함께 나도 모르게 커뮤니티에 더 녹아든 것 같다. 햄버거만 먹다가 갑자기 따뜻한 흰쌀밥이 들어온 느낌이 들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