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타닥 타다닥.......틱틱틱틱.
몇 글자 타이핑 하지도 못하고선 백스페이스만 거듭 눌러댄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잘 쓰던 못 쓰던 술술 진도가 나가는 줄 알았다. 아니 분명 그렇다고들 하던데. 혹시 나만 이런 건가? 제대로 시작도 못했는데 나의 브런치 글쓰기 미래가 벌써부터 걱정되기 시작했다.
도통 떠오르지 않는 다음 문단을 쥐어 짜내려 눈을 치켜뜬 채 이리저리 두리번두리번. 가끔 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쥐기도 하면서 말이다. 누가 보면 공모전 출품작이라도 쓰는 줄 알겠네. 훗.
가만 생각해 보니 최근 몇 년 사이 요즘처럼 의자에 자주 앉은 적이 없었다. 아이들 등교가 끝이 나고 드디어 방해꾼 없는 순간이 되면 일단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부터 켜는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나를 기다리는 듯 쳐다보고 있는 빨래들과 식탁 위 상황은 애써 외면하고 슬초브런치 단톡방부터 들여다본다. 세상에나~작가님들 이러기입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 작가님들의 위대한 글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아니 그 순간에도 계속 발행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흥미진진하고 따뜻하고 웃기고 재치 넘치는 글들을 술술 써낼까? 요즘 내가 즐겨보는 오디션 프로그램인 싱어게인의 '재야의 고수'조를 보는 것 같다. 작가 되기 프로젝트가 아니고 '숨어있는 작가 찾기' 프로젝트가 틀림없는 듯하다.
잡생각 말고 이제 나도 써야지. 써야지.
모니터에는 다시 커서만 깜박깜박. 앞으로 나아가기가 왜 이렇게 힘드냐. 어쩌다 내가 이걸 하고 있는 거야... 브런치 너 대체 뭐냐. 죄 없는 브런치 탓하기도 매일의 루틴이다. 그러다 가만히 상기해 봤다.
평소 팔로우 하고 있던 이은경 작가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슬초 브런치프로젝트 모집 예정 글을 보게 됐고, 처음에는 '글쓰기? 한번 해보고 싶다.' 하는 막연한 마음만 있었다. 하지만 프로젝트 잘못 발 들였다 마무리도 못하고 중도포기 할 것 같다는 메타인지를 십분 발휘해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잊었다. 아니 잊은 줄 알았다. 그 사이 신청이 시작되었고 어느 날 다시 뜬 피드에서 '이제 곧 마감합니다. 고민 그만!'이라고 하셨다. 고민 그만. 이 문구가 꼭 나한테 하는 말처럼 느껴진 건 왜였을까? 뭐지, 나 고민하고 있었던 거니? 이끌리듯 사이트를 찾아 들어가 신청했다. 그리고 3주 차를 지나 4주 차까지 따라오게 되었다.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직장에서 업무로 하던 것을 제외하면 나는 그다지 책, 글쓰기와 가깝게 지냈던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며 독서라는 것이 중요하다 하니 관심을 가지게 됐고 책으로 아이를 키워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는 클수록 내 의지대로 따라와 주지 않았고 내 열정도 체력과 함께 점점 시들해져 갔다. 그러다 코로나가 찾아왔고 학교수업 등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던 시기라 무언가 놓칠까 봐 학교 e알리미를 비교적 잘 확인하던 때였다. 어느 날 도착한 알리미에서 서울시학부모지원센터의 학부모 연수 모집 안내문을 발견했다. 교내 연수가 아니면 참석이 힘들어 제목만 읽고 지나쳤을 텐데 그날따라 파일을 열어 꼼꼼히 읽어보았다. 찬찬히 목록을 보다 여러 과목 가운데 '독서길잡이'가 눈에 띄었고 어쩌다 보니 신청지원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정말 별 기대 없이 시작된 연수는 12주 과정이 끝나고 심화과정까지 이어졌고 참가했던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소모임을 만들어 3년째 지금도 매월 줌으로 독서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책, 독서라는 것을 다시 배웠고 육아가 아닌 나 스스로를 위한 독서, 함께 읽는 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읽기에서 쓰기라는 다음 단계로 확장하고 싶은 작은 욕심이 싹트게 되었다.
어쩌다 유심히 보고 신청한 학교 연수가 나를 여기 브런치까지 이끈 셈이다.
MBTI검사에 따르면 나는 계획적 인간이 아니란다. 상당 부분 맞는 것 같다.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 사실 브런치 작가지원 할 때 지원동기, 활동계획 이런 거 쓰는 게 살짝 부담스러웠다. 작가에 합격하고 나서 글을 막 써 재껴서 메인에도 뜨고 브런치북 공모전도 나가고, 막 책 내자는 연락도 받아서 내 책을 출간하는 '작가'가 되겠다는 큰 포부를 갖고 시작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또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막연히 조금씩 움튼 마음이 나를 브런치로 안내했다는 게 더 맞는 말이지 않을까.
막상 시작해 보니 매일 이걸 왜 했나 하며 툴툴거리고 있다. 턱없이 부족한 표현력에 마치 보물찾기 하듯 내 안 저 깊숙한 곳을 수시로 열심히 뒤져야 한다. 아직은 과제 수행을 위해 한주 한 주 힘겹게 마감을 지켜가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쓰다 보면 난 또 어딘가로 나아가 있겠지. 우연한 계기가 나를 브런치 이곳에 도착하게 한 것처럼. 나를 또 한 번 성장시켜 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오늘도 식어버린 아메리카노 한잔 옆에 놓고 타닥타닥 두드리고 있다. 미래의 어느 날 돌이켜보며 얘기하게 되기를 바란다.
"어쩌다 시작한 브런치가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네요."
<메인배경사진 Unsplash의Amelia Bartle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