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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담 Nov 17. 2023

우아한 책방지기의
어느 설레는 금요일

2028년 11월 10일 금요일, 날씨 햇살 가득

오전부터 연말에 있을 연이은 이벤트로 작가미팅, 출판사미팅에 방송출연 관련 미팅까지 하고 보니 어느덧 오후가 훌쩍 지나있다. 집에 잠시 들러 아들 간식이라도 챙겨주고 싶지만 금요일답게 벌써 시작된 교통체증으로 어서 책방으로 목적지를 변경한다. 겨우 목표시간에 맞춰 주차장에 도착했다. 서둘러 올라가는데 주차장 계단을 꽉 채운 고소한 커피 향이 잔뜩 긴장했던 얼굴과 피곤한 몸을 풀어주는 듯하다. 책방 출입문 앞에 세워진 알림판은 오후 늦게 남은 엷은 햇살에 더욱 반짝이고 예뻐 보인다. 지난주부터 새로 합류한 직원은 그야말로 다재다능이다. 책방의 신간들에 끼워놓는 메모를 쓰는 걸 보고 범상치 않음을 예상은 했지만 예쁜 손글씨에다 귀여운 그림까지 손수 그려 넣어 만든 아날로그 포스터는 여기가 보통 책방이 아니라고 보여주는 듯하다.


책방 문을 열고 들어서니 늦은 오후의 여유로움과 바깥 날씨와 대비되는 온기가 느껴졌다. 은은하게 흐르는 재즈음악과 카페코너에서 책 한 권과 여유를 즐기는 분들, 책을 살피며 둘러보는 손님들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직원들은 위층에 마련된 행사코너에서 막바지 체크를 하고 있었다. 책방을 연 이후 이런저런 이벤트들을 해오며 행사 준비에는 익숙해졌지만 오늘같이 특별하고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는 평소보다 일찍 와서 현장을 살피고 또 살피게 된다. 며칠 전부터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행여나 오시는 분들이 썰렁함을 느끼지는 않을까 어젯밤 급히 추가로 준비한 무릎담요도 좌석마다 비치했다. 또 뭘 잊은 게 없나 살펴보는 동안 직원이 스크린을 내려 오늘의 행사 안내를 화면에 띄운다. 


  "슬초브런치 2기 정기모임 with 이은경 작가님"


5년 전, 잘 알지도 못한 채 슬초브런치 프로젝트를 신청할 때만 해도 이런 순간은 꿈도 꾸지 못했다. 내 인생을 바꿔버린 슬초브런치. 우리 동기님들의 정기모임이자 송년모임을 이은경 작가님을 초대해 책방에서 열기로 한 게 여름쯤이었다. 그때부터 이날을 얼마나 설레며 준비했던가. 사실 지난 3년간 책방을 열고 무수히 좌절하고 절망하며 근근이 버텨왔다. 이제는 이 세계와 시스템에 꽤 적응이 되었다. 책방을 하지만 책 읽을 틈 없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우아하게 커피 마시며 하루종일 책만 볼 수 있는 심적 물리적 여유도 부리게 되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글쓰기에 열심히 정성을 다했던 지난날. 덕분에 첫 책도 출간하며 진짜 '작가'라는 타이틀도 가지게 되었다. 계속해서 책을 쭉쭉 출간하는 다른 작가님들과는 다르게 책 읽기에 더욱 몰두했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기쁨을 같은 공간에서 함께 나누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올랐다. 매사에 매우 걱정 많고 생각 많은 내가 그리 오랜 시간 고민 없이 결정하고 실행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기는 하다. 

알고 시작한 어려운 일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현실은 더욱 매서웠다. 그래도 그때마다 함께 글 쓰고 있는 동기들이 힘을 주었고 은경 작가님이 늘 말씀하셨듯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쓰다 보니 조금씩 내가 꿈꾸던 일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혼자서 자그마하게 꾸리던 책방은 이제 8명의 직원과 함께하고 있고 올해 말 계약이 끝나는 이 건물을 떠나 통창과 테라스, 루프탑까지 갖춘 5층짜리 멋진 나의 건물을 지어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게다가 집과도 가까워져 시간적으로도 더욱 여유 있어질 예정이라 설레지 않을 수 없다. 몇 배로 더 넓어진 공간에서 머릿속에 그려온 재미있는 일들을 실행할 생각을 하니 에너지가 막 샘솟는다. 또 엄마가 일을 시작하는 바람에 어찌 큰지도 모르게 중학생이 된 둘째와 무사히 사춘기의 파도를 넘어 십 대를 마무리하고 대학생으로 새로운 발걸음을 뗀 첫째와도 더 늦기 전 같이 보낼 시간을 늘릴 수 있게 되어 너무나 만족스럽다. 


준비하며 지난 시간들을 곱씹어 보니 오늘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첫 책방은 공간이 너무나 협소해 모임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 이제 2기 동기모임 정도는 가능하고 내년부터 옮겨갈 새 책방에서는 1기~7기 전체모임도 문제없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오늘 밤 행사를 멋지게 잘 치르고 싶다. 이제 두 시간 남짓이면 온라인으로 주로 만나던 사람들이 이곳에 모인다. 이미 베스트셀러를 몇 권씩이나 출간한 작가님들도 계시고 작품이 드라마로 제작되어 대박 난 분, 글쓰기 선생님이 된 분, 맛깔나게 글쓰기를 하다 말하기에 소질을 발견하고 강사로 맹활약 중인 분, 글쓰기는 중단했지만 모임엔 누구보다 열심인 분 등등 한자리에서 만나기 힘든 분들이 곧 이곳을 메울 것이다. 몇 달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함께 이야기할 예정이다. 은경 작가님이 친히 와서 특강까지 함께 해주신다고 하니 또 눈물 콧물 뺄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 


두 시간 남짓 남은 시간을 기다리며 잠시 사무실로 들어왔다. 일찍 도착하는 동기님들 오시기 전 어서 밀린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답신해야 할 이메일들이 가득한 수신함을 열었다. 인사 담당자가 보내놓은 새로 뽑을 직원들 이력서가 한가득이다. 오전에 미팅한 방송 작가님에게 벌써 내용을 정리하고 컨펌을 요청하는 메일이 와있다. 부지런도 하시구나. 29년도 TvN의 새 프로젝트로 세계의 동네책방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는데 메인 프리젠터로 참여하게 되었다. 6개월에 걸친 해외 촬영 스케줄이 새롭게 이전할 책방업무와 행사 기획들과 겹치는 지라 고민을 많이 했지만 동네책방의 부흥을 희망하는 책방지기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승낙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이런 귀한 기회를 얻는 게 아직도 신기하고 얼떨떨 하지만 감사히 즐겨보려고 한다.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되는 작은 아이를 위해 2월 방학에 가족 유럽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는데 3월에 촬영 시작이라 스케줄마저 딱 맞아떨어짐이 감사할 따름이다. 


급한 회신이 필요한 메일들부터 처리하고 다시 책방으로 나가려는데 입구 쪽에서 한 무리가 들어서며 웃음소리가 들린다. 앗, 벌써 오셨나 보다 우리 작가님들~~~~

목소리만 들어도 아는 든든한 나의 지원군들. 어서 오세요!!

설레는 하루가 이제 시작되는 기분이다. 



<사진출처: 메인 赖 桢和 from Pixabay      본문  Peggy from Pixabay,  UnsplashVita Maksyme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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