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진 마음에는 햇살같은 말이 필요하다

by 쓰담지

엄마는 해보다 빠르게 하루를 열었다. 새벽 기도와 운동을 놓치지 않고 이어가셨다.

매일 같아 보였지만, 엄마의 하루는 매일 달랐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롤러코스터 같았다.

엄마가 운동을 다녀오고 아침을 챙겨주시는 시간, 엄마의 컨디션은 표정과 몸짓으로 드러났다.

두런두런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날은 컨디션 호조, 간단히 차려진 아침상만 덩그러니 있고 엄마가 침대에 누워 있는 날은 컨디션 난조.

뿐만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엄마의 힘겨움이 전해졌다. 식은땀이 나서 힘든 날. 자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려고 누웠는데 뜻대로 잠이 들지 않는 날. 자꾸 손의 떨림이 심해져서 어깨통증에 뒤척이는 날. 물건을 들다가 떨어뜨리는 날.

그런 날, 엄마는 조용했다.

"현지야, 미안한데 이거 좀 찾아줄 수 있어?"

"엄마, 이거 좀 도와줄래?"

엄마는 혼자 할 수 없음이 속상한지 늘 조심스레 도움을 청하셨다. 그리고 매번 미안해하셨다.

"응, 그럼! 엄마 뭐 더 필요해?"

"나도 그럴 때 있어."

"그럴 수 있지."

우리는 엄마를 다독였다. 엄마는 대체불가 안영미, 소중한 사람, 존재 자체가 힘이라고.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걱정하셨다.

"에휴, 내가 나아야 하는데, 너희한테 짐이 되면 안되는데…"

사랑이 많은 엄마는 집에서 가까이 살고 있는 언니네 집에 평소처럼 조카들을 보러 갔다.

3살 터울 자매 조카들은 엄마의 기쁨이자, 보물들이었다.

그날도 조카들과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호기심 대장 둘째 조카가 물었다.

"할머니, 손이 왜 떨려요?"

호기심 많은 아이의 순수한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앞서 엄마에게 툭툭거리는 아이의 모습을 눈여겨 보고 있던 언니가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얘들아, 할머니는 아프셔. 그래서 손도 떨리는 거야. 그러니까 너희도 할머니를 도와주고 응원해줘. 할머니는 엄마의 엄마야, 소중한 사람이야 함부러 하지마!"

눈물을 글썽이며 말한 언니, 분명 좋은 의도였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엄마의 마음이자, 일렁이는 딸의 마음이었다.

그때, 큰 조카가 엄마에게 다가왔다.

"우리 할머니는 아파서 손이 떨리는 거예요. 맞지요?"

그리고는 엄마의 떨고 있는 손을 꼭 잡았다.

작은 손으로, 꼭.

엄마는 마음이 찡하면서 동시에 속상했다고 하셨다.

천사같이 선하고 햇살처럼 따뜻한 아이. 할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이 참 예쁘고 대견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어린 손주에게까지 걱정을 끼치는구나 하는 마음이 무거웠다고 말이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그 이야기를 여러 번 하셨다.

나에게, 아빠에게, 가족들에게.

"윤채가 손을 꼭 잡아주더라. 그 예쁜 게 언제 그렇게 컸는지 참 대견하더라. 그런데... 애가 할머니 아프다고 마음을 쓰니까 안쓰럽더라고."

그리고 말끝에 꼭 덧붙이셨다.

"내가 너희한테 짐이 되면 안되는데..."

엄마가 처음 그 이야기를 하셨을 때 그저 윤채의 예쁜 마음에 감동했다. 대견했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지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깨달았다.

엄마는 생각보다 훨씬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이 자식들에게, 손주들에게까지 부담이 될까 봐.

가장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짊어지고 계셨다. 세상 그 무엇보다 걱정이 스며든 엄마의 마음이 제일 무거운 것이었다.

"엄마."

나는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짐이 아니야. 절대로."

"아픈 건 잘못이 아니야. 엄마가 열심히 살아준 덕분에 우리가 있는 거고, 윤채랑 윤지도 있잖아."

"엄마는 대체불가 안영미야. 아주아주 소중한 사람이야."

엄마가 작게 웃으며 "고마워" 하셨다.

그늘진 마음에는 햇살같은 말이 필요하다. 믿으시는지, 안 믿으시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계속 말할 것이다. 진심을 가득담아서 말이다.

엄마는 짐이 아니라고.

존재 자체가 우리의 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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