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베스트 드라이버다.
삼남매의 운전 연수도 엄마가 담당하실 정도로 엄마는 운전에 능숙하셨고, 운전을 좋아하셨다.
무엇이든 함께하기를 좋아하시는 엄마는 좋은 곳을 발견하면 사람들을 태워 여러 차례 즐거움을 나누곤 하셨다. 답답할 때는 혼자서도 씽씽 드라이브를 하셨다.
활동적이고 외향적인 엄마에게 운전은 자유였고, 독립이었다.
그런데 파킨슨 진단 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몰랐다. 그러나 분명히 달라지고 있었다.
엄마의 운전은 조금씩 느려졌다. 느려지는 반응속도와 비례하여 엄마가 모는 차도 서행했다.
언제부턴가 누군가를 태우는 것도 부담스러워하셨다.
엄마의 상황을 아는 지인분들은 엄마가 운전하지 않도록 픽업하러 오셨다.
“영미야, 내가 데리러 갈게.”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도시에 사는 이모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엄마가 운전대를 잡으셨다.
병원 다녀오는 길, 이모할머니는 걱정어린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셨다고 한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예전 같지 않다. 운전하지 마라.”
엄마는 이야기를 전하며 한껏 속상해하셨다.
그리고 얼마 후 또 다른 일이 벌어졌.
그날 엄마는 모임 장소에 차를 몰고 가셨다. 식당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데 후방 센서의 경보음에도 조금은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후진을 하다가 ‘쿵’ 기둥에 부딪힌 것이다.
다친 곳은 없었다. 하지만 차가 살짝 우그러졌고 엄마의 마음도 위축되었다.
엄마와 내 차를 공유하고 있는지라, 엄마가 차를 쓰셔야하는 날에는 출퇴근을 시켜주셨다. 퇴근하는 나를 태우러온 엄마는 잠시 눈치를 살피더니,
“현지야…어쩌지? 미안해. 차를… 기둥에 박았어.”
목소리가 떨리셨다.
“잉?”
나는 차에서 내려 차를 살폈다. 뒷범퍼가 동그란 모양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아차 싶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차에 올랐다.
“엄마, 괜찮아? 차는 뭐, 괜찮아. 엄마 안 다쳤으니까 다행이야.”
“미안해…아니, 좀 더 가도 될거라고 생각했어. 나이가 들었네 정말. 나이가 드는 건 슬픈 일이야.”
엄마는 계속 미안해하셨다.
“에이, 진짜 괜찮아. 젊은 사람들도 그래. 누구나 그럴 수 있잖아.”
“그래, 고마워.”
집으로 돌아왔다. 주차를 하려고 후진을 하는데 센서가 내내 “삐-” 울렸다. “아이참…”
엄마의 표정이 어두웠다.
“엄마, 괜찮아?”
엄마가 말씀하셨다.
“안괜찮아.”
“속상해. 그걸 왜 박았지? 진짜 운전하면 안되나…”
엄마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에이, 엄마 괜찮아. 사람 안다쳤고, 차도 잘 다니잖아.”
나는 엄마를 꼭 안고 토닥토닥했다.
그렇게 괜찮아지신 줄 알았다.
그런데 집에서 동생이 왔을 때, 엄마가 다시 그 이야기를 하셨다.
나도 함께 있었다.
“오늘 차를 기둥에 박았어. 현지는 괜찮다고 하는데… 나 안 괜찮아.”
나는 살짝 서운했다.
“어어어? 엄마 안괜찮다고?”
내가 그렇게 괜찮다고 했는데, 위로가 안 됐나 보다.
그런데 엄마가 내 표정을 보시더니 웃으셨다.
“하하하, 아이고, 우리 딸 서운해? 미안해, 엄마가. 괜찮다는 거 알아. 근데 속상한 걸.”
엄마가 웃으셨다. 엄마의 웃음에 나도 웃었고, 동생도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웃고 넘어갔다.
웃음은 결국 멈춘다. 우리의 웃음도 끝이 났고, 엄마는 꽤나 오래 침울해 하셨다.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것 같다.
베스트 드라이버였던 엄마.
삼남매의 운전 연수를 담당하셨던 엄마.
좋은 곳을 발견하면 사람들을 태워 여러 차례 즐거움을 나누곤 하셨던 엄마.
답답할 때는 혼자서도 씽씽 드라이브를 하셨던 엄마.
그 엄마가 이제는 생활반경 내에서만 조심스럽게 운전하신다.
우리가 함께 있으면, 엄마는 조수석에 앉으신다.
나는 운전대를 잡는다.
엄마가 내게 운전을 가르쳐주셨듯이, 이제는 내가 엄마를 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