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 필요할 때 얘기할게, 엄마는 괜찮아

by 쓰담지

삶은 예기치못한 일의 연속이다. 마치 엄마의 손떨림처럼 말이다.

정년퇴직을 하신 아빠는 취미로 시작한 다육이를 노후 아이템으로 삼으셨다. 하나를 하면 깊게 제대로 하시는 분이라, 매니아가 확고한 이 분야에서 가능성을 보신 듯 했다. 그래서 매일 킵장, 즉 다육이를 키우고 케어하는 공간으로 출근하셨다.

엄마와 새벽일과를 시작으로 아빠의 하루도 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일하던 회사 퇴사자 대상 재취업 구인 공고를 보셨고, 지원을 하셨다. 그렇게 아빠는 재취업을 하게 되었다. 정년퇴직 후 2년 반 만의 일이었다.

아빠는 가능하면 포항에 있고 싶어 하셨다. 오랜 주말 부부 생활 후 엄마의 발병에 늘 미안해하셨고, 엄마 곁을 지키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지원 근무지도 포항으로 선택하셨다.

하지만 회사 사정상 포항에는 자리가 없었고, 당진에만 티오가 있었다.

출근 1주 전, 합격 통보를 받으셨다.

다시 주말부부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엄마는 복잡한 표정이셨다.

“아빠가 다시 일하시니 좋긴 한데… 또 혼자 보내려니 미안하네.”

여느 때와 같이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 자리, 아빠는 동생과 나에게 말씀하셨다.

“딸! 아들! 아빠가 부탁 하나 하자.”

“네?”

“아빠가 일하러 가면 제일 걱정되는 게 엄마 아침 일정이야.”

새벽 4시 40분. 새벽기도와 아침 운동. 아빠가 엄마와 함께 해오던 그 일과.

“피곤하겠지만, 엄마랑 같이 새벽기도 갔다가 아침 운동 좀 해줄 수 있겠니?”

동생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같이 갈게요.”

“걱정 마세요.”

우리는 격일로 나누기로 했다.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은 내가. 화요일, 목요일은 동생이. 토요일은 아빠가 오시니까 아빠.

그렇게 아빠의 자리를 채우겠다고 했지만, 사실 부담이 없지는 않았다.

동생도 나도 취침 시간이 이르지 않았다. 보통 12시가 넘어서 잠들었다.

그런데 새벽 4시 30분 기상이라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힘차게 시작했던 첫 주, 단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확연히 달라졌다. 피로가 쌓였고 아침에 몸을 일으키는 것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래도 새벽 4시 30분, 알람이 울리면 일어났다.

운전석에 올라 핸들을 잡고 엄마와 함께 교회로 갔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운동장으로 갔다.

2주만에 도무지 잠을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운동장으로, 나는 차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동생은 한술 더 떠 아예 일어나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그렇게 차에서 잠을 자던 어느 날, 엄마의 운동메이트 분이 말씀하셨다.

“따님,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엄마 운동 마치고는 내가 태워다 드릴게.”

고마운 말씀이었다. 그래서 새벽기도 마치고 엄마를 운동장에 내려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도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점차 그게 불편해지신 듯 했다.

엄마가 우리를 앉혀놓고 말씀하셨다.

“얘들아.”

“응?”

“엄마 진짜 괜찮아.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데 같이 가줘서 고마워. 엄마는 너희 마음 다 알아. 고마워. 그런데 같이 안가도 괜찮아. 엄마는 혼자 다니는 게 편해.”

“엄마…”

“진짜야.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얘기할게. 지금은 엄마 괜찮아.”

나는 엄마를 봤다.

엄마는 웃고 계셨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엄마는 엄마구나.

엄마를 과소평가하지 말자.

엄마는 할 수 있다.

파킨슨이 있어도, 엄마는 여전히 강했다.

엄마의 아침도 여전하다. 평일 새벽 일어나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본인을 위해 씩씩하게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