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은 우리를 무겁게 만들뿐,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현실을 바꾸려면 무엇이든 해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긴 여정과 불확실함으로 엄마는 긴장하고 계셨다. 아침 준비를 하면서도 계속 시계를 보셨다. 예약 시간에 늦을까 봐, 길이 막힐까 봐.
"엄마, 괜찮아. 천천히 가자. 엄마랑 여행 간다 생각하니까 신나는데?"
나는 일부러 가볍게 말했다. 엄마도 애써 웃으셨다.
"그래, 그래야지."
차에 올랐다. 포항에서 분당까지, 편도 4시간.
고속도로를 달렸다. 출발할 때는 어두웠던 하늘이 점점 밝아졌다. 엄마는 창밖을 보다가 챙겨온 간식을 건네고는, 다시 창밖을 보셨다. 주무시면 좋을 텐데, 끝내 주무시지 않으셨다.
"엄마, 졸리면 자도 괜찮아."
"아니야, 괜찮아. 네가 운전하는데 내가 자면 안 되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별것 아닌 일상 이야기들. 동생 얘기, 아빠 얘기, 요즘 날씨 얘기.
휴게소에 들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휴게소 얼마나 걸리지? 미안해, 또 화장실 가야겠어."
엄마가 말씀하셨다. 소변을 자주 보는 것 또한 파킨슨 증상이라고 했다. 거기에 긴장까지 더해지니 화장실을 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엄마 괜찮아? 이번 휴게소에서는 호두과자 콜?"
휴게소에서 따끈한 호두과자를 샀다. 엄마랑 나란히 서서 호호 불어 먹었다. 점심도 휴게소에서 먹었다.
그렇게 4시간을 달려 오후에 분당서울대병원에 도착했다.
초행길이라 긴장했지만, 무사히 병원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엄마랑 같이 병원으로 들어섰다. 규모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밖에서는 몰랐는데 병원에 들어서니 사람이 많았다. 우리나라에 아픈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새삼 놀라웠다.
정신을 차리고 인터넷에서 미리 알아본 대로 기존 병원 기록을 제출하고 접수를 했다. 대기 인원이 많아 두자리가 넘어가는 대기 순번에 진료 대기실에 가서 앉아서 앱으로 커피를 주문했다.
"엄마, 앉아 있어. 커피 찾아올게."
엄마는 카페인을 자제중이라 따뜻한 차, 나는 따뜻한 커피로 카페인을 주입했다.
대기실로 돌아와 앉았다. 대기번호에 뜬 엄마이름을 찍어 가족 단톡방에 보냈다. 다들 마음이 여기로 향해있을 게 불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앞 번호가 하나씩 사라지고, 우리 순서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1시간이 넘게 기다렸다.
엄마는 핸드폰을 보기도 하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셨다. 나는 틈틈이 전광판을 확인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엄마와 나, 둘이 함께.
선생님은 친절한 분이셨다. 기존 병원 기록을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파킨슨 맞습니다. 초기인데, 잘 발견하셨어요. 꾸준히 잘 관리하면 괜찮습니다."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선생님, 약을 먹는데 몸이 자꾸 묵직하고 깔리는 느낌이 들어요. 더 힘든 것 같아요."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럴 수 있습니다. 힘드셨겠어요."
"한번 걸어보시겠어요?"
선생님이 일어나셨다. 엄마도 일어나셨다.
"앞으로 천천히 걸어보세요. 네, 좋습니다. 이번엔 뒤로 걸어보세요."
엄마는 앞으로 걷고, 뒤로 걸으셨다. 선생님은 엄마의 걸음걸이를, 몸의 기울기를, 종종걸음을 유심히 보셨다.
"네, 앉으세요."
엄마가 다시 앉으셨다.
"걷거나 하는데 크게 문제가 있어보이지는 않네요. 약은 제일 약한 걸로 해도 괜찮겠어요. 약은 바꿔볼게요. 하나 더 드릴 건데 이거는 외출하거나 손떨림을 좀 진정해야할 때만 추가적으로 드세요. 3개월 뒤에 경과를 봅시다."
엄마의 얼굴이 환해졌다.
"감사합니다."
"이번 약도 힘들면 다른 약 쓰면 됩니다. 몸에 맞는 약을 찾아가는 거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은 처방전을 써주셨다. 다음 진료 예약도 잡았다.
진료실을 나왔다. 엄마가 작게 말했다.
"오길 잘했다."
한결 밝아진 얼굴이었다.
진료를 본 시간은 길어야 10분이었는데 엄마는 10년을 얻은 표정이었다.
약국에서 약을 받았다. 새 약. 새로운 시작.
다시 차에 올랐다. 돌아가는 길, 또 4시간.
엄마가 가족 톡방에 메시지를 보내셨다.
"잘 다녀온다. 약 바꿨어."
언니와 동생의 답장이 바로 왔다.
"다행이다."
"고생했어요."
나는 운전대를 잡았다. 엄마는 이번에도 주무시지 않으셨다. 하지만 올 때와는 달리, 편안해 보이셨다.
휴게소에 또 들렀다. 이번에도 호두과자를 샀다.
"이따 저녁은 뭐 먹을까?"
"글쎄, 뭐 먹고 싶어?"
별것 아닌 대화가 이어졌다.
집에 도착한 건 밤이었다. 긴 하루였다. 하지만 헛되지 않은 하루였다.
걱정은 우리를 무겁게 만들뿐,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현실을 바꾸려면 무엇이든 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해보았다. 그리고 조금, 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