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여는 든든한 동행, 걸음이 이어진다.

by 쓰담지

나는 자고 있지만, 세상은 잠든 적이 없다.

커튼 사이로 빛이 스미기도 전인 새벽 4시 40분, 우리 집의 일상이 시작된다. 오늘도 어김없이 살풋 열린 귀로 두 사람의 소리가 들려온다.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조심스럽게 방문이 열리고, 바스락 바스락 옷 갈아 입는 소리, 물 마시는 소리, 띠리링 도어락을 풀고 문이 열리는 소리,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 계단 내려가는 소리.

두 사람은 바로 엄마와 아빠다. 이른 새벽 두 분은 함께 나가신다. 매일, 같은 시간에.

마음이 일렁인다. 포근하게 다시 이불을 덮는다. 조금 더 자야지. 두 분은 오늘도 성실히 하루를 열었다.

그렇게 집을 나서 교회로 간 두 분은 새벽기도 후 운동장으로 가신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든, 바람이 휘몰아치든, 땀이 뻘뻘나든, 옷깃을 여미게 되든 상관없이 매일. 운동을 하신다.

혼자였던 걸음은 아빠가 돌아오고 둘이 되었다.

아빠가 정년퇴직을 하시고 집으로 돌아온 건 2년 반 전이었다. 성실하게 일하셨던 아빠는 오랜 외지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집으로 오셨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우리는 모두 축하했다.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리고 두 분은 그 성실을 오롯이 담은 걸음을 함께 하셨다.

돌아오신 아빠는 공백을 메우듯 엄마께 모닝 데이트를 제안하셨다.

“안영미씨, 우리 같이 다니자.”

그렇게 새벽 기도부터 운동까지 함께 하루를 맞이 하셨다.

엄마 혼자 걷던 길을 이제 두 분이 걷게 되었다. 든든한 지원군이 함께하니 파킨슨 밀어내기가 조금은 덜 외로워졌다.

아빠는 나에게도 제안하셨다. 비실비실하는 내가 영 걱정되셨나보다.

“현지야, 너도 같이 하자.”

“응? 아…하하하 아빠 아침에 못 일어나겠어요…”

매번 같은 대답이었다. 그리고 매번 같은 시간, 잠결에 들리는 나가시는 소리.

그런데 재작년 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

아빠의 제안으로 동생과 함께한 건강 검진에서 치료가 필요한 병이 발견된 것이다. 불가피하게 요양의 시간이 필요했고 부모님은 물러서지 않으셨다. 단호히 “같이 가!” 하셨고 본인이 아픈 것보다 더 신경을 쓰셨다.

영양식 챙겨먹이기, 더 먹이기, 또 먹이기, 그리고 무조건 운동! 건강회복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동이 트기 전 캄캄한 시각, 어김없이 아주 정중하게 방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

“현지야, 일어나.”

포기하지 않으시는 두 분.

매일 나는… 끌려갔다 어르신들이 가득한 운동장으로.

해도해도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는 건 힘들었다.

운동장에는 온통 어르신들이었다. 다크써클 드리운 나와는 달리 운동장은 어르신들이 뿜어내는 활기가 가득했다.

트랙을 걷는 분, 기구 운동하는 분, 맨발로 걷는 분, 뛰는 분, 스트레칭하는 분…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이하고 계셨다.

5시 45분부터 7시 50분까지, 2시간 동안 헤롱헤롱한 건 나 뿐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운동메이트들 중 어린 축에 속했다.

젊은이의 등장은 어르신들의 눈길을 끌었다.

“아이고, 딸이 참 착하네!”

외향적인 엄마, 은근 인싸인 아빠 덕분에 나는 차문을 열과 동시에 내내 인사하느라 바빴다.

아빠는 정해진 루틴대로 기구 운동을 하러 가셨다. 엄마는 곧장 맨발걷기를 시작하셨다.

늘 각자의 운동을 하시다가, 아빠도 기구 운동을 마치면 맨발걷기를 하신다. 우리 아빠는 경상도 상남자, 결코 손잡고 걷는 법이 없다. 언제나 거리를 두고 내외하신다. 배려는 앞서 걷다가 엄마의 속도에 맞춰 걸음을 늦추거나 잠시 기다리는 것.

나도 엄마를 따라 맨발로 트랙을 걸었다. 몇 바퀴를 도는지 굳이 계산하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그러다 어르신 한 분이 슬쩍 다가오셨다.

“어머니 많이 좋아지셨어.”

“네?”

“처음에 오셨을 때보다 훨씬 좋아지셨다니까. 걸음도 훨씬 좋아지고.”

엄마를 지켜보고 계셨던 분들. 매일 새벽 운동장에서 엄마를 만나는 분들이 슬쩍 와서 알려주셨다. 엄마가 나아지고 있다고.

7시 50분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함께 아침을 먹었다. 부모님은 상쾌해 보이셨다.

“오늘도 잘했어.”

아빠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가 웃으셨다.

나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조금 더 자야지.

그렇게 한 달 가까이, 거의 매일 함께 새벽 운동장에 갔다. 부모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귀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했다.

매일 새벽 4시 40분, 날씨와 상관없이 함께 나서는 두 분.

혼자 걷던 엄마의 길에 아빠가 함께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엄마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함께 걷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 걸음은 계속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