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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듭스 Feb 03. 2021

당근 초보자의...

식탁의자 업그레이드 프로젝트

작년 봄, 옷장에 들어가지 않는 옷들을 대거 처분한 적이 있었다. 그동안 버리는 걸 잘하지 못해서 여기저기 짐꾸러미가 많았는데, 더 이상 놓아둘 곳이 없어 극단의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인터넷 검색을 하여 헌 옷을 수거해가는 업체를 찾아내었고, 가족 4명의 의류 총 44 킬로그램을 11000원을 받고 넘겼다. 그렇게 대대적으로 짐을 한번 정리하니 옷장에 여유가 생겼고 내 맘에도 여유가 생긴듯했다.


새해 들어서는 안 쓰는 생활용품들을 좀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지인이 대뜸 ‘당근 마켓’을 추천한다. 당근? 들어는 봤는데... 일단,‘당근 마켓’ 앱을 깔고, 사용해 보라고 한다. 전화번호 노출 없이도 거래가 가능하고 활용하기에 따라 필요한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도 있다고. 그래서 나는 그 좋다는 당근을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매물로 내 눈에 띈 건 그릇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미사용 접시들. 사진을 찍어 올려놓으니, 빠르게는 1분도 안돼서 당근! 이 울렸고, 며칠이 지나서 문의가 오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뒤로 밀려있으면 ‘끌어올리기’라는 신박한 기능을 사용할 수도 있다! (지인이 쓰던 전문 용어 ‘끌올’의 기능을 터득한 날 어찌나 뿌듯하던지 xD)

집안 여기저기를 뒤지니, 나에게는 필요가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요긴하게 사용할 만한 물건들이 꽤 많았다. 대부분은 구입하거나 선물 받은 후 수년째 사용을 하지 않은 새 제품들이다. 현재 판매되는 시세보다 좀 더 가격을 낮춰 놓으면 금세 주인이 나타났다. 하루하루 매너온도도 올라갔다.;-D


그렇게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이번엔 좀 응용을 해보기로 했다. 그건 바로...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을 판매한 후, 좀 더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그중 첫 번째로 꽂힌 건 바로 식탁의자.


지금 우리 집의 식탁의자는 i사의 대표 의자 중 하나이고 남편과 아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착석감이 좋다고 하지만 나는 왠지 불편하다. 그래서 그 녀석들을 당근에 처분한 후 새로운 의자를 구입하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니 문제가 좀 있다. 새 의자를 미리 구입해 놓은 상황이 아니라,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의자가 사라지면 분명 남편과 아이가 의자를 찾을 것인데...


의자? 당근에 팔았어! 하기엔, 뭔가 좀 내가 당근에 미친 사람처럼 오해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며칠 전, 아들은 엄마! 당근 열심히 하네! 근데, 살림 다 갖다 파는 건 아니지? ( 뜨끔;;;  )

평소 작업실과 집에만 있던 내가 며칠에 한 번씩 동네를 나갔다오니, 뭔가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식탁의자를 당근에 팔았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어쨌든, 어젯밤 나는 현재 가족들이 사용 중인 식탁의자를 사진 찍어 당근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방금 그 의자들을 구매하겠다는 알람이 왔다!

엇! 팔려고 올려놓은 건 맞지만 이렇게 반응이 빨리 올 줄 예상을 못했고, 당장 내일 저녁에 식탁의자가 없는걸 눈치챈 아들과 남편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살짝 걱정이 된다. 한자리를 차지하던 거라... 없어지면 눈에 확 띌 텐데... ( 괜챤아... 우리에겐 서재 의자가 있잖아~ )


몰라 몰라. 뭔가 낡은걸 새롭게 바꾸려면 어느 정도 주변의 비난은 감내해야 한다. ( 응?? ) 나는 마음을 다잡고 덤덤히, 의자를 픽업하러 오시겠다는 고객님과 약속시간을 잡았다. 지금 이 의자로 밥을 먹는 건 내일 점심이 마지막이다. 점심을 먹은 후, 나는 조심스럽게 이 의자들을 차에 실을 것이다.

이게 다~ 식사 시간의 질을 높이기 위해 좀 더 안락하고 편안한 의자를 장만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니, 부디 군소리들 말기를...


한때 우리 가족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졌던 사랑하는 의자들아! (믿기 어렵겠지만 진심이야! ) 새 주인한테 가서도 이쁨 많이 받길!!



에필로그

이렇게 녀석들에게서 마음을 깨끗이 정리한 나는 내가 원하는 의자가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음... 없다. 그렇다면 일단 알람을 등록해 놓고, 한동안 기다려 보다가 이거다! 싶은 매물이 나오면 꼼꼼히 살펴본 후, 최대한 매너있게 챗을 시도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이거 제가 사고 싶어요!


** 주의 : 그동안 거래해 본 사람들 대부분은 정상적? 인 사람들이지만, 생각지도 못한 형태의 매너없는 사람들도 조금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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