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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듭스 Jul 24. 2019

인어공주

언젠가 희구와 안데르센 동화를 읽다가 물거품이 되어버린 인어공주를 생각하며 울음을 터트린 적이 있었다. (세상에나.. 그렇게 순수한 때가 있었다니... >..< 그나저나, 이 물거품 버젼은 원작의 결말은 아니라고 하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대표적 새드엔딩이 아닐까 한다.) 어릴 적엔 잘 몰랐는데, 나이 들어 다시 동화를 읽어보니 왜 이리 슬픈 내용이 많은 것인지... 사랑하는 왕자를 칼로 찔러 죽이지 않으면 물거품이 된다는 설정이 지금 생각하니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물거품의 부드럽고 아련한 이미지 때문인지 애틋한 여운이 남아있다.


다리가 물고기인 인어공주와 왕자님의 사랑이야기. 그것 참 특별한 인연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코펜하겐에 도착하자마자 인어공주 동상을 찾아 나섰다. 인어공주 동상은 우리가 머문 캠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린게리니(Langeline) 거리를 따라 나있는 해변가에 있었는데, 근처가 공원이라 주차하기도 좋았다. 여기저기 인어공주의 동상(Den Lille Havfrue)이 있는 곳이라고 표지판이 되어있어서 찾는 데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유럽의 3대 썰렁이라고 해서, 과연 어떨까 궁금했는데 실제로 와 보니 그리 나쁘지 않았다.


쓸쓸하게 물거품이 되어버린 동화 속 인어공주 이야기 때문인지 홀로 고독을 질겅질겅 씹고 있을 인어공주를 상상했는데, 동상 주변의 많은 관광객들 때문에 그랬을까? 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관광객을 맞이하는 인어공주는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바닷가 돌무더기 해변에 사람도 없이 저 동상만 덩그러니 있었다면 또 다른 느낌이었겠지?


인어공주 동상은 1913년 에드바르트 에릭슨(Edvard Eriksen)이라는 조각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모델은 국립극장의 매우 아름다운 프리마돈나 였는데 그녀는 후에 조각가의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이 2006년이니까, 인어공주의 나이가 93세나 되었다. 그동안 머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도 잘리는 수모를 겪었다지만 우리가 갔을 때는 모두 복원되어 있었다. 80cm에 불과한 가냘픈 인어공주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어딜 가나 몰지각한 인간들은 있게 마련이니...

 



인어공주 동상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 미술서적에서 인상 깊게 본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공동의 발명’이 떠올랐다. 머리는 생선이고 다리는 사람인 모습. 안데르센 동화 속의 인어공주가 바다에서 육지로 가고 싶어 했다면, 머리가 생선인 이분은 육지에서 바다로 가고 싶어 한 걸까? 상반된 상황을 맞물리게 조합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초현실주의 작가 ‘마그리트’의 이 의미심장한 그림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 걸까?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만큼이나 애절한 사연이 있을듯하다. 물거품이 돼버린 어여쁜 인어공주를 바라보며, 미술사 책에서 보았던 ‘생선 인간’을 떠 올린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이겠지?..?
 

<. L'Invention Collective  공동의 발명. > 1934, 73.5x97.5, oil on canvas

* 이 글이 공개되는 지금은 2019년이니까, 이젠 인어공주 동상이 106세가 되었다.

*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 ~ 1967.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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