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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듭스 Sep 02. 2019

‘행복한 사과’

이것이야말로 굿!! 디자인!!

오래전,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선생님이 써주신 글을 찾아내었다. 저 ‘행복한 사과(2000-2002)’를 만든 ‘무니지니’가 바로 남편과 나이다. (사과와 관련한 얘기를 하자면 좀 길어서.. 그건 따로 몇 꼭지를 써야겠다.)

당시 김신 편집장님께 우리가 만든 사과를 무작정 보내드렸는데, 웃는 사과를 보시고는 감동? 받아서 이렇게 멋지게 스튜디오 촬영도 해주시고, 글도 써서 최고의 디자인 잡지 ‘월간 디자인’에 행복한 사과를 소개해주셨었다. 모쪼록, 그게 벌써 이렇게나 오래된 일이 되어버렸다.




무니지니의 행복한 사과는 시간에 따라 사과 색깔이 변하는 것에 착안해 다양한 스티커를 사과에 붙여 모양이 새겨지게 했다.
 
사과는 사람의 눈을 밝게 해 주었다. 뱀의 꼬임에 넘어간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따먹은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마음의 아이가 아니었다. 부끄러움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왕성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로부터 방대한 지식체계를 만들게 되었다. 그것의 결과는 실로 엄청난 것으로, 비록 낙원에서 추방당했지만 사람은 자신의 주변 세계를 이용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가공할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성경>의 창세기가 사실이라면 사과는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중요한 동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사과는 인류 역사에서 충분한 역할을 했다.
 
많은 철학자, 과학자,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영감을 제공한 것이 그것이다. 뉴튼으로 하여금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도록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수많은 시와 소설, 동화의 중요한 소재로 등장했다. 철학자 스피노자가 내일 세상이 망한다고 해도 오늘 심겠다고 한 나무도 바로 사과나무다.

하고많은 과일 가운데 왜 사과인가? 아마도 사과만큼 매력적인 과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시큼하고 달콤한 그 맛은 물론 탐스러운 빨간색은 아주 유혹적이다. 백설공주를 죽이기 위해 마녀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사과라는 것은 이 과일이 얼마나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녔는가를 보여준다. 사과는 또 얼마나 값싸게 즐길 수 있는가. 그것은 숲 속의 난쟁이들에게 더부살이하는 처지의 백설공주에게 맛보게 할 만큼 싼 것이다.

싸고 맛있고 아름답다는 것. 그것은 바로 굿 디자인이 추구하는 바가 아닌가. 좋은 품질과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저렴하기까지 하다니.
 
어디 그뿐인가. 사과는 들고 다니면서 먹기에도 편하고 먹다 남은 것을 버려도 환경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다. 휴대성과 환경친화성에서 만점을 받을 만하다. 게다가 한 개의 사과라도 여러 사람이 나눠 먹기 편하게 생겨서 나눔의 의미도 가르쳐준다.
 
역시 조물주의 디자인은 한치의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인간 세계의 디자이너들이란 바로 이러한 조물주의 솜씨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잘 발견되지 않는 굿 디자인의 면모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색으로 먹을 시기를 가르쳐준다는 점이다. 사과나무에서 꽃이 지고 열매를 맺은 뒤, 옅은 색의 사과는 점차 짙은 빨간색으로 변한다.
 
그리고 충분히 익었을 때 가장 아름답고 탐스러운 색을 띠어 따먹어달라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래도 먹지 않으면 가지에서 떨어지기까지 한다. 참으로 잘 디자인되었다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어떤 굿 디자인 제품도 이보다 더 잘 디자인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림도 그리고 농사도 짓는 강석문, 박형진 부부는 이렇게 시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사과의 속성을 이용해 ‘무니지니의 행복한 사과’를 재배하여 팔고 있다. 사과가 익기 전에 표면에 얼굴 모양의 스티커를 붙여 놓으면, 햇빛을 받지 못한 부문만 색이 변하지 않게 되어 자연스럽게 웃는 모습이 새겨지는 원리다.
 
그들은 사과에 새겨 넣을 문양을 고민하다가 사람이 웃는 모습에 착안해 미소 짓는 사과를 생각해냈다고 한다. ‘행복한 사과’를 보면서, 또 먹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다. 무니지니의 행복한 사과는 www.munijini.com를 방문하면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글/ 김신 월간 <디자인> 편집장, 월간 <디자인> 2001년 4월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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