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기억 속 풍경을 걷는다.”
- 마르셀 프루스트
우리 가족이 서울로 이사 왔을 때, 아파트 끝자락엔 커다랗게 아파트의 이름과 번호가 적혀 있는 벽과 공터 하나가 있었다. 군데군데 잡초가 제멋대로 자란 흙바닥은 아이들이 한참을 제멋대로 뛰어다녀 평평하면서도 어지러웠다. 가끔은 고양이 한 마리 기척을 남기고 사라지곤 했다.
나는 그 공터에서 혼자 노는 걸 좋아했다. 아파트 벽에다 공을 탕탕 튕기면서, 무슨 대단한 게임이라도 되는 양 혼자 웃기도 하고, 공이 내 글로브를 벗어나면 누가 본 것도 아닌데 괜히 민망해하곤 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돌이켜보면 그건 놀이라기보다는 위안이었다. 말없이도 위로가 되는 것들이 세상엔 분명히 있다.
벽이 튕겨주는 공의 리듬, 조금 느리지만 정확한 응답.
학창 시절 내내, 나는 친구가 많은 편이었다. 점심시간마다 옹기종기 둘러앉아 반찬을 나눠먹고, 쉬는 시간마다 우유팩을 접어 농구공인양 우유박스에 집어넣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절 내 마음을 열어본 친구가 누군지 지금은 도무지 떠오르질 않는다. 다정한 듯 어깨를 감싸던 손길보다, 속마음을 꺼낼 데 없었던 마음이 더 또렷하게 남는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나는 친구가 거의 없다. 아무도 내게 등을 돌린 건 아닌데, 누구도 내게로 오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멀어졌다.
요즘은 책을 읽고 생각을 곱씹는 시간이 더 편하다. 사람보다 글이 덜 피곤하고, 대화보다 사색이 덜 아프다.
어느 날은 괜찮지만, 어느 날은 문득 외롭다. 그럴 땐 가끔, 어린 내가 아파트 벽 앞에서 공을 튀기던 장면이 떠오른다. 햇살이 기울고, 그림자가 길어지던 시간. 공은 튕기다 말고 옆으로 굴러갔고, 나는 천천히 그걸 주우러 갔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건 내게 아주 중요한 기억이다.
혼자였지만 괜찮았고, 괜찮지만 어딘가 허전했다. 외로움은 그런 것이다.
누구나 겪지만, 누구에게도 내보이기 어려운 감정.
그래서 더 오래가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