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사람

by Erasmus Kim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근 나는 번아웃에 시달린다. 회사에 출근하는 게 싫다. 예전에는 손쉽게 처리하던 업무도 지금은 전전긍긍하며 마무리 짓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 시달린다. 주변의 동료들이 내 능력을 의심한다고 여긴다. 무능력하고 연차가 높은 나는 얼마나 이 회사에서 버틸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가끔은 내일 닥쳐올 누군가의 비난에 지레 겁을 집어먹고 밤새 불안에 시달리며 잠을 설친다.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다.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아픈지. 이 불안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밀턴 에릭슨이라는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치료사가 있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소아마비에 걸렸다.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의 주치의는 머지않아 밀턴이 죽을 거라며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그를 지탱해 준 유일한 낙은 7명의 형제자매들이었다. 밀턴의 형제자매들은 매일같이 밀턴이 누워있는 침대로 찾아와 이야기를 건넸다. 밀턴은 아무런 대답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은 편하게 자신들이 속 마음을 털어놓았다. 밀턴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형제자매들의 대화를 들어주고 그들의 표정, 몸짓, 그리고 목소리가 변하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었다. 밀턴은 수년간 형제자매들의 대화를 들으며 궁금증을 키워 나갔다. 극적으로 병을 이겨낸 밀턴은 이런 어린 시절 경험을 통해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로 성장한다.


나는 밀턴 에릭슨의 삶과 그의 치료방식에 끌렸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정신과 의사인 그가 활용한 간접 최면 요범, 무의식의 신뢰, 환자 맞춤형 접근 등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했다. 아쉽게도 그는 생전에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그나마 남아있는 것은 그의 제작들이 밀턴 에릭슨의 치료 기록과 인터뷰를 남긴 서너 권의 책뿐이다. 아쉽지만, 우린 더 이상 밀턴 에릭슨이 치료하는 모습을 볼 수도, 그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다.


나는 밀턴 에릭슨에게 묻고 싶었다.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아픈지. 이 불안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밀턴 선생님, 6일간의 연휴가 끝나고 내일부터 다시 출근해야 합니다. 벌써부터 끔찍이도 우울합니다. 이런저런 업무 생각이 나서 불안하고 답답합니다.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좋습니다. 당신에게 조언을 주기 전, 먼저 이렇게 묻고 싶군요.

지금 이 순간, 당신 안에서 조용히 말하고 있는 그 작은 목소리는 뭐라고 하나요?"


"네? 내 안에 목소리요? 작은 목소리?"


"그래요. 회사에 가기 싫고, 가슴이 답답하다는 그 감정 아래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진짜 이야기'가 숨어 있지 않나요? 천천히 심호흡을 크게 하고 생각해 보세요"


"흡... 후... 흡... 후...."


"당신이 지금 느끼는 불안은 사실 당신이 더 이상 예전 방식으로는 살 수 없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아챈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느끼는 답답함은 단지 '싫다'가 아니라 다르게 살고 싶다는 몸의 언어입니다. 이건 병이 아닙니다. 깨어남의 신호입니다."


"네? 단순히 회사에 가기 싫어서가 아니라고요?"


"당신은 답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단지 혼자 듣기 두려울 뿐이죠."


"두... 두려운 거라고요?

음... 가족이 있어요. 딸아이도 있고. 겨우 9살 이거든. 대기업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포기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전 회사가 너무 싫어졌는데, 포기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에요. 너무 힘들어요."


"그렇지요. 그 무게는 누구도 가볍게 말할 수 없습니다.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의 마음, 그 안에는 말 못 할 두려움, 책임감, 죄책감, 그리고 사랑이 모두 섞여 있지요. 하지만, 당신이 지금 내딛지 않아도, '내딛고 싶어 하는 마음'은 무시하지 마십시오.'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마음을 무시하진 말라고요? 저는 어떻게든 이 회사에서 버텨야 하는데도요?"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당신 마음 안에서 자꾸만 속삭이는 그 질문 —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그건 억누르거나 지워야 할 불안이 아니라, 당신의 삶이 새로운 방향을 찾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신호라고요?"


"당신의 딸은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아빠를 지켜볼 겁니다. 그녀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진심이었던 사람을 기억할 겁니다."


간신히 직장에서 버티고 있을 뿐인데도, 그게 새로운 방향을 찾고 있는 과정이라니.

어쩌면 난 내 진짜 삶을 간절히 찾고 싶어 회사가 그렇게 싫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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