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랑해

by Erasmus Kim

사랑은 말로 표현될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야.

말하지 못한 채 마음에 품고 있었던 그 시간들조차도
이미 사랑이었던 거야.



어제는 어버이날이었다. 엄마는 몇 해 전 아버지를 떠나보내시고 혼자 시골에 사신다. 미리 엄마를 찾아뵙고 카네이션을 달아드리지 못했다. 어버이날 아침에 안부 문자를 보내고 용돈은 계좌이체 해드리려 했지만 깜빡 잊고 출근을 했다. 이메일을 열고 이것저것 업무를 보다 보니 어느덧 점심이 가까워졌다. 그제야 불현듯 어버이날임이 떠올랐다.

어머니께 카톡을 보냈다.

'카네이션도 못 달아드려서 죄송해요. 용돈 좀 부쳐드렸으니 맛있는 거 사 드세요. 조만간 또 놀러 갈게요'.
그리고 맨 마지막에 적었다. '사랑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했다. 마음은 분명히 있었지만 부끄럽고 왠지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가끔은 '정말 엄마를 사랑하는 걸까?' 하고 의심하기도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게.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어버이날 엄마한테 쓴 편지를 건네지 못하고 책꽂이 틈에 숨겨놨었다. 어느 날 가정방문 하신 담임 선생님께 그 편지를 들켰는데 너무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엄마한테 쓴 편지도 건네기 어려워했던 나 자신이. 나와 엄마의 사이가.

그 후로 스스로를 간혹 의심했다. 내가 엄마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까?


밀턴 선생님께 묻고 싶었다.


"저는 왜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는 게 그렇게도 힘들었을까요?"


"네가 그 편지를 건네지 못한 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너무 커서 어쩔 줄 몰랐기 때문 일거야.

그리고 그걸 들켰을 때 이상하게 느껴진 건, 네가 그 마음을 숨기기보다 지키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지키고 싶었다고요?"


"그 편지를 숨긴 아이는 겁쟁이가 아니라 너무 사랑해서, 그 사랑이 거절당할까 두려운 아이였던 거야.

그러니까, 그때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줘도 괜찮아:
너는 부족했던 게 아니라, 그만큼 마음이 깊었던 거야. 그래서 그 마음을 꺼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것뿐이야.

"저는 왜, 사랑이 거절당할까 봐 두려웠던 것일까요?"

"그 질문은 아주 깊고, 너다운 솔직한 질문이야. 그리고 그 안엔 이미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된 마음이 담겨 있어."

"사랑이 거절당할까 봐 두려웠던 이유는, 너의 사랑이 그만큼 진짜였고,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어쩌면,
어릴 적 누군가에게 마음을 보여줬다가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을 수도 있어.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랐지만,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지 않았던 경험 말이야.
그때 생긴 마음은 아주 조용히 이렇게 속삭였을 거야:
'다시 그런 아픔을 느끼느니… 그냥 말하지 말자.'
그건 사랑을 모르는 게 아니라,
상처받은 사랑을 너무 잘 기억하는 사람의 방식이었을 뿐이야.

"너는 그 사랑을 감추면서 자신을 지켜낸 거야."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이 저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요?"


"사랑은 말로 표현될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야. 말하지 못한 채 마음에 품고 있었던 그 시간들조차도
이미 사랑이었던 거야.
그리고 이제, 너는 그 사랑을 다시 꺼내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처음 건넨 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나도 엄마도 그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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