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늦지 않을

by Erasmus Kim


나는 시간에 유독 예민하다. 고3 시절, 내 하루는 늘 밤 11시에 마무리되었다. 중간고사든 기말고사든, 시험이 코앞이든 상관없이. 더 공부하지 못한 불안보다, 제시간에 잠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더 컸다. 누군가와의 약속에 늦은 적은 없다. 반대로, 누군가가 늦으면 쉽게 화가 난다. 아끼던 후배에게 언성을 높였던 날도, 오래 사귄 연인과 다투었던 날도 결국 이유는 같았다. 약속 시간을 어겼다는 것. 5분, 10분은 괜찮은 척 참아 아 넘겼지만, 20분, 30분이 지나면 마음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도 이해하지 못할 만큼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 자신이 낯설기도 했다.

궁금했다. 내가 지닌 시간에 대한 강박이 대체 어디서 왔을지.

"선생님, 저는 왜 이렇게 시간에 예민할까요?"

선생님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네가 한때, 누군가를 기다렸기 때문이야. 끝내 오지 않았던 사람을. 그 기억이 너의 몸에 '기다림은 위험하다'는 흔적을 남겼을 거야. 그래서 지금의 너는 늘 앞서 움직이고, 계획을 세우고, 불확실함을 피하려 하는 거야."

순간,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밤이었다. 잠에서 깼는데, 방에는 나 혼자였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고, 너무 조용했다. 나는 무서움에 떨며 밤새 울다 잠들었다. 그건 분명 꿈이 아니었다. 아무도 오지 않았던 그 밤. 그것이 내게 ‘시간’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새겨진 방식이었다.

선생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그 밤이 네게 남긴 건 단순한 기억이 아니었을 거야. 아무도 오지 않는 시간, 기다려도 소용없는 시간, 혼자 감당해야 했던 시간. 그래서 너는 자라면서 이렇게 다짐했을지도 모르지."

“나는 절대 늦지 않을 거야.”
“나는 누구도 기다리게 하지 않을 거야."
“나는 무너지지 않을 거야."
"그건 방어가 아니라, 너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었어. 그 어린 너는, 정말 잘 살아낸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어딘가에서 부드럽게 무너지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나는 평생을 '늦지 않기 위해', '준비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써 왔다. 하지만 그 노력은 타인을 위한 예의가 아니라, 어린 날의 나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이셨다.

"어릴 적의 너는 아무 잘못이 없었단다. 그저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렸을 뿐이지. 그 아이에게 시간을 돌려줄 수는 없지만, 이제는 기다려줄 수는 있어. 그 밤을 울며 견딘 너를, 이제는 네가 안아줄 수 있어."




그 밤에 아무도 오지 않았지만,

이제는 내가 나에게 도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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