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야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가끔은 내 앞날이 답답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친구들은 다들 잘 나가는데 나만 이런 것 같아서 우울할 때도 있다. 그런데 30대 후반이 되어보니 넘어진다는 것에 생각이 바뀐다. 아무 일 없이 순탄한 삶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넘어지는 순간은 반드시 오게 마련이다. 그런 순간이 이왕 온다면 빨리 오는 것이 좋다. 그리고 넘어지는 것은 때로는 좋다.
어릴 때는 내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주어졌다. 수능을 봤다면 어느 대학에 진학할지 결정해야 한다. 동시에 어느 전공을 선택해야 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내가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선택이다. 대학 졸업을 하면 어느 직장에 취업할지 결정해야 한다. 요새 같은 취업 불황의 시기라면 최대한 많은 기업에 원서를 넣고 합격시켜주는 곳에 입사하게 된다.
수능 수험생, 대학 졸업자... 우리는 모두 비슷한 시기에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된다. 이후부터는 네 나이가 얼마니까 이제는 무슨 결정을 해야 해!라는 지침 같은 것은 없다. 무슨 결정을 해야만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자동적으로 생성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은 넘어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31살에 한국에 들어와서 재취업하려고 했을 때 최종면접에서 계속 고배를 마셨다. 그 나이가 되고 보니 열정보다 중요한 것은 실무능력이었는데 나는 그런 면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 아프리카에서 2년간 활동한 경험을 밑천 삼아 국제협력분야에 지원했었다. 하지만 나는 영어가 아주 능숙한 것도 아니었다. 관련된 공부를 전공하지도 않았다. 그 분야에서 논문까지 썼거나, 영어가 능숙한 사람들 앞에서 나는 아마추어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실무경력이 탄탄하지 않다손 치더라도 아프리카까지 다녀 올 정도로 열정 있는데... 진실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데 왜 알아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생각해보면 참 어린 생각이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나는 약대시험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 것이다. 만약 내가 한 직장을 순탄하게 오래 다녔다면... 아프리카에서 들어오자마자 취업이 바로 됐다면... 시험을 보게 됐을까? 절대 아닐 것이다. 취업에서 계속 낙방했기 때문에 나는 시험에 도전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만족한다. 그래서 사람은 넘어질 필요가 있다. 계속 낙방하자 나는 나 자신에게 물어봤었다. “이 길이 정말 네가 원하는 길이야?” 아니었다. 나는 이미 2년간의 회사생활을 하면서 조직생활은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다 취업까지 내 마음처럼 잘 되지 않으니 취업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있었다.
우리 남편은 35살에 희망퇴직을 (당)했다. 한참 일할 시기에 희망퇴직이라니… 나는 그때 친구에게 전화해서 펑펑 울었다. 남편 앞에서도, 부모님 앞에서도 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하지만 희망퇴직을 하면서 남편은 새로운 회사로 옮겼다. 회사가 있는 곳을 따라서 이사도 했다. 그 과정에서 집을 팔고 옮기는 경험을 했다. 한 번의 경험으로 나는 집값의 원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의 재테크에 아주 큰 영향을 줬다. 지금도 남편과 자주 얘기한다. 그때 희망퇴직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