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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약사 Mar 22. 2020

나이 마흔의 남편, 다음 달 연극무대에 오릅니다.

공돌이 남편, 나이 마흔에 순수한 열정으로 도전하는 연극 무대

우리 남편과 저는 대학생 때 마당극 동아리에서 만났어요. 그때는 연기라는 건 잘 모르고 그냥 친구따라 마당극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남편도 친구 따라 들어온 곳이라 해요. 거기 예쁜 언니가 있었는데 남편 친구(나의 동아리 선배이기도 한 ㅎ)가 그 언니를 좋아했어요. 

저랑 남편은 2년 차이가 나는데요. 남편이 복학생이 돼서 동아리에 왔을 때 처음 만났어요. 수줍은 미소를 지은 선한 눈웃음이 너무 예뻤어요. 그로부터 9년 뒤 남편과 저는 결혼을 했답니다.

동아리에서 마당극이란 걸 했지만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은 없어요. 섬세한 연기 표현보다는 풍자에 힘을 싣는 것이 연극과 다른 마당극의 특징이거든요. 


몰랐는데, 남편은 연극에 계속 관심이 있었나 봐요. 저희 남편이 작년에 다꿈스쿨에서 자기혁명캠프를 수강했고,그때 2020년의 목표를 세웠는데요. 그 중에 연극을 하는 게 있었어요.  

우리 남편은 저랑 달리 ㅎㅎ 한 번 내뱉고 나면 꼭 지키는 사람이라서 말을 내뱉는 것을 굉장히 신중하게 생각해요. 저는 내뱉었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금방 접기도 하는 팔랑귀, 냄비근성~ 푸하핫

그런 남편이 연극을 하겠다고 목표로 세웠고, 다음 달에 드디어 연극 무대에 오릅니다.^^

직장인 연극 동아리에 처음 찾아간 것은 작년이었는데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공연이 성사되지 못했어요. 

마흔 직전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자 찾아갔는데 계획이 엎어지고 나니, 남편도 열정이 조금 사그라들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이번에 지원할 때는 수없이 고민하고 망설였다고 해요. 

모임장소 앞까지 갔다가 

'그냥 되돌아갈까.'

생각하는 참에, 이전 오티 때 만났던 분이 아는 체를 하는 바람에 모임에 가게 됐대요.

그렇게 시작된 직장인 연극 동아리... 드디어 다음 달에 공연을 올린다고 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잘 진행이 될지 걱정도 되지만 남편의 새로운 모습을 볼 생각에 많이 설레입니다. 

남편의 2020년 목표를 봤을 때도 사실 저는 조금 설레였어요. 


무언가를 성취하겠다,

무언가를 해내겠다,

무엇이 될 것이고, 어떤 금액을 목표로 재테크공부를 하겠다...

의 목표에 익숙했던 제게, 

 

울 남편의 목표. 출처: https://blog.naver.com/artover/221826803034


1인극에 도전하겠다,

요트 여행을 하겠다,

유량을 즐기겠다는 남편의 목표가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남편의 목표가 설레였던 큰 이유는, 계산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냥 하고 싶은 마음', '순수함'이 고스란히 느껴져서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도 대학생 때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열정 하나만큼은 탑플레이어거든요. ㅋㅋ

 


지금은 생각이나 우선순위가 많이 바뀌어서 '연극같은' 것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어요. 지금은 가치가 당장 드러나는 것들이 좋아요. '돈'이든 '영향력'이든 말이죠. 열정은 그대로인데 생각 속에 '계산'의 요소가 많이 들어와있는 것 같아요. 

울 남편이 직장인 동아리에 간다고 했을 때 저는 조금 걱정했어요. 직장 다니면서 연극한다고 하면 얼마나 열심히 하겠나 싶어서요. 설렁설렁하게 되지 않을까? 직장 핑계로 한두번씩 연습도 빠지고 공연 올리기 직전까지 온갖 갈등만 난무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걱정 말이죠. 사실 시간 많은 대학생 동아리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데 직장인 동아리는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전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다들 열정적으로 연습하신다고 해요. 연령대도 다양해요. 어린 20대부터 60대까지도요. 오신 분들의 순수한 열정에 남편이 많이 놀랐다고 해요. 어제는 연극 무대를 만든다고 톱질도 하고 망치질도 했다네요. 

 

남편의 글 '순수한 열정' 출처: https://blog.naver.com/artover/221826803034


 



대학생 때 학점이나 취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마당극 동아리를 하면서 저는 가슴이 꽉 찬 20대 초반을 보냈어요. 거기서 우리 남편도 만났고, 가족보다 더 가까운 동아리 사람들과 매일매일 동아리방에서 수다 떨고 연습 핑계로 만나서 바로 맥주 마시러 나가고 밤새 놀다가 피곤해서 공강시간에 동아리방 가서 자고요. 

동아리 후배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는데 위암이었어요. 학교와 병원이 가까워서 병원 면회를 자주 갔었어요.하늘나라 가기 직전까지도 병원에서 이야기 나눴고 후배의 가족들과도 친해졌어요. 그리고 어느 날 밤에 후배는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 후에 결혼 직전까지도 후배 기일에 맞춰 후배 고향에 찾아갔어요.

학점, 취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동아리에서 저는 삶과 죽음에 대해 배웠어요.

'순수한 마음'을 대하노라면 동아리 시절이 떠올라요. 저의 자전거 여행과 아프리카 봉사활동도 떠오르고요. 





지금 하고 있는 것들에서 조금은 '계산'을 빼내야 할 것 같아요. 내 삶을 뒤돌아봤을 때 제 마음을 아련히 할 것은 그런 것들이라는.... 확신이 들어요. 

순수한 열정, 

그냥 해보고 싶은 것, 

바로 

그런 것들.

나이는 먹어도 마음은 여전히 20대라는 말은 정답이에요. 마흔이 가까워와도, 두 아이의 엄마여도... 제 마음은 여전히 세상을 순수한 눈으로 탐구하고 싶습니다.

'나이'라는 계산을 배제하고, 마땅히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통념'을 뛰어넘고,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는 나의 '가오'에 따르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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