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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약사 Feb 25. 2020

회사 밖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당신

나는 청개구리였다. 고3 때는 느닷없이 이과에서 문과로 바꿨다. 물리랑 수학을 배우면서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사는데 하등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이 공부를 해서 무엇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회나 경제 과목이 내 인생에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건 겨우 수능이었다. 나보고 평생 물리나 수학을 공부하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수능을 잘 보는 게 오히려 내 인생에 훨씬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지금 이 공부를 해야 하는 당장의 이유가 필요했다. 나 스스로가 납득되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고3 때 이과반에서 홀연히 문과로 전과했고 혼자서 제2외국어 공부를 해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청개구리 같았다. 남들과 똑같이 사는 삶은 매력이 없었다. 나는 특별하고 싶었다. 지금 내 삶을 벗어난 곳에 아주 멋진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고등학생 때 내가 1차로 지망했던 곳은 해군사관학교다. 일반 대학에 다니는 것보다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는 것이 멋있어 보였다. 해군이 된다고 늘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는 것은 아닐 텐데. 이렇게 나는 현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나 혼자 해군의 이미지를 그려보고, 그것을 동경했다. 점수가 부족해서 해군사관학교는 불합격했다. 이제 생각해보면 다행인 것 같다. 군인이 하는 일은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단지 자유롭게 해적처럼 바다를 누비는 모습만 상상했다니. 나처럼 자유로운 사람이 군대라는 조직에서 얼마나 마음의 방황을 했을지… 이제야 그려진다. 


해군사관학교를 불합격하고 나는 일반 공과대학에 입학했다. 내가 다녔을 때는 학부제라서 1학년 때는 모든 공대 과목을 선택해서 들을 수가 있다. 그래서 2학년에 올라가면서 과를 정하면 된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전기전자공학이나 컴퓨터공학을 지망했다. 그 당시에는 가장 인기 있는 전공이었고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가장 인기 있는 전공 중 하나다. 하지만 나는 이때도 다시 청개구리 정신이 발동했다. 전기전자 과목을 배우는데 이렇게 복잡한 걸 배워서 인생에 어떻게 써먹을지 회의감이 들었다. 그때는 지루한 교재만 봐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처럼 전기전자와 컴퓨터가 얼마나 사회에 많이 쓰이고 있는지를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서 나는 지도교수님과 상담했다. 교수님은 상담 끝에 내게 도시공학과를 추천해주셨다. 안 그래도 친구들은 전부 전기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겠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을 평생 할 자신이 없어서 고민하던 차에 지도교수님이 내게 잘 맞는 전공이라며 추천해주시니 나는 인생의 큰 답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도시공학과 안에는 도시설계, 도시계획, 교통공학, 교통계획, 환경공학 등의 과목이 있다. 나는 군대에 대해 전혀 모르면서 해군사관학교를 꿈꿨을 때처럼, 도시공학이 뭔지도 모르면서 나만의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도시공학과를 졸업해서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야겠다는 나만의 그림 그리기 말이다. 살기 좋은 도시에는 자동차가 없다. 자전거를 타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 그리고 길에서 사람들은 항상 화기애애해다. 후훗. 이렇게 글을 적는데도 웃음이 나온다. 어찌 보면 참 순수하고 어찌 보면 난 참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말이다. 


공부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겠지만 실제 현장과 내 꿈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괴리가 있는가. 나는 사람들이 하하호호 웃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는 나만의 동화책을 써 놓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나는 전국에 차가 다니지 않는 자전거 도로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자연을 느끼면서 희망찬 얼굴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상상을 하고는 했었다. 후후후훗. 하지만 내가 취직한 연구원에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자동차 통행량을 조사하고 연구하고, 어떻게 하면 도로를 더 만들 수 있는지 타당성 분석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만드는 일을 했었다. 나의 꿈이 와장창 깨지던 순간들이었다. 


나의 문제를 알겠는가? 현실은 아는 게 전혀 없으면서 내 멋대로 꿈만 꾸고 그것을 동경했다. 그리고 막상 그곳에 가고 나니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며 실망했고 다시 다른 세상을 꿈꿨다. 그래서 나는 26살에 퇴사를 감행했고 28살에는 아프리카까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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