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
오늘 하루도 치열하게 몸부림쳐야 할 모든 이들에게 이 영화를 권장하고 싶다.
영화 <4등>은 국가 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인권영화다. 다양한 인권 이슈에 대한 영화를 제작해온 인권위는 이번에 스포츠 인권을 소재로 정지우 감독과 손잡았다. 그러나, 이는 인권 관련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하지 않는다. 이 글의 시작은 주인공 준호가 한 질문으로부터 모든 게 비롯된다.
실력은 있지만, 수영 대회에만 나가면 4등으로 들어오는 '준호'.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느낀 엄마의 선택은 왕년에 잘 나갔던 전 국가대표인 '광수'를 코치로 데려오는 것이다. 그런 그가 내민 조건은 엄마의 방관. 광수가 그다지 미덥지는 않지만 결국 그의 결정에 따르기로 한다. 그렇게 준호의 순위만큼은 거의 1등인 2등으로 들어오게 됐고, 이에 모든 가족이 행복해 하지만 준호의 동생이 물어본 질문, "형, 정말 맞고 하니까 잘한 거야?"에 집은 풍비박산이 난다.
여기서 우린 질문해봐야 한다. 과연 1등 만을 애타게 원했던 엄마의 선택이 오롯이 그녀만의 잘못이었을까? 실질적으로 '바깥일을 하느라 바빠서'라는 핑계로 모든 걸 방관했던 사람은 아빠가 아닌가? 그가 모든 걸 부인에게 맡기고 아이들의 교육에 부재할 때 그녀 혼자 고군분투했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고자 이를 질문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엄마도 아빠도 여기서는 철저한 방관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아들이 맞으면서 수영을 한다는 사실에 격분한 아빠는 뒤늦게 아이들 교육에 개입한다. 그러나,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져 버린 가족 간의 관계는 회복 불가능하게 된다. 준호를 향한 기대가 사라지자, 엄마는 급격히 모든 관심을 둘째로 돌리게 된다. 게다가 바쁜 아빠는 다시 원래 있었던 '방관자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첫째인 준호는 맞으면서 배웠던 기억을 고스란히 동생에게까지 전해준다.
그렇다면, 광수의 입장은 무엇인가? 그가 어렸을 때 죽도록 싫어했던 '옛날 방식', 즉 맞으면서 배우는 수영을 왜 지금 와서 그가 실행에 옮기고 있는가? '사랑의 매'로 둔갑된 그의 폭력에 그는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이는 다 너를 위한 것이다." 마치 어른으로서 아이를 지도하는데 가장 적절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의구심이 든다. 그가 깨달은 이치는 과연 자신이 어렸을 때 맞았던 기억이 알고 봤더니 '사랑의 매'였다는 것 일까 아니면 세상은 뭐로 가던 1등만 기억한다는 사실일까? 마지막에 가서, 그토록 좋아하는 수영을 그만두겠다는 준호에 의해 강제적으로 코치 자격 박탈을 당한 광수에게 엄마는 찾아와 다 채우지 못한 강사료를 다시 되돌려달라고 한다. 그런 그가 엄마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아들을 향한 집착을 꼬집듯이 얘기한다. "당신의 그 지나친 집착만 없어도 당신 아들은 훨씬 잘될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1등을 향한 집착은 광수에게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만년 4등에서 2등으로 올라간 준호에게 자세가 흐트러져서 그런 것이라며 나무란다. 그러고는 연습량을 늘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좋아하는 수영을 자유롭게 하고 싶은 '준호'. 그는 혼란스러워한다.
좋은데 못하면 하지 말아야 하는가? 형식 밖을 벗어나면 그건 돌연변이인 것인가?
준호는 마지막 수영대회에서 자신만의 방식, 즉, 틀에서 벗어나는 자유롭게 수영을 하면서 손쉽게 1등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자리에 1등을 그렇게나 바라던 엄마도, 그의 코치였던 광수도 없다. 여기서 또 다른 의문점을 제기한다. 1등이라는 목표 속에서도 어른들은 틀 밖을 벗어나지 말라고 말한다. 1등이라는 틀 안에서 준호를 가둔 것도 있지만, 그보다 수영을 대하는 틀을 형식화시켜줌으로써 개념적으로 먼저 가둬버린 것이다. 자유형은 이렇게 배영은 저렇게. 무조건 정통대로. 그렇게 준호가 생각하는 수영에 대한 관념을 없애고, 자신들이 외치는 형식만을 주입식으로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다.
결국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건 사회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1등. 금메달. 금상. 뭐든 1이라는 숫자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온 우리들의 의식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왔다. 1등이 아니면 무용지물이라고 외치는 엄마도 수영은 즐기면서 하라고 해도 내심 2등까지 올라갔다는 말에 좋아하는 아빠도 자신이 걸어온 길을 걷지 말라면서도 맞아서라도 1등을 거머 줘야 한다는 광수도 사회라는 집단에서 나오는 무의식이 몸에 밴 것이다. 1등이라는 집념 하에 구성된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평소 클래식을 듣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라는 이름은 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맨부커상을 탄 '한강'씨에 대한 재조명도 빠질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보다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면 피겨 스케이팅의 여왕 '김연아'부터 체조 선수 '양학선'까지 다방면으로 우린 각 분야에서의 1등의 이름만을 안다. 1등만 기억하는 사회에 사는 우리는 당연히 1등을 지양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이게 과연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 맞는가?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 조금 더 '에디'스러워져야 한다. 좋아하는 일에 끝까지 매진해봐야 한다. 비록 그 결과가 1등이 아닐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