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던 오후의 초파리

지나간 하루의 냄새들

by 서란아

똑똑

햇빛과 바람이 창을 두드렸다.

따사로운 햇빛과 상쾌한 바람이 동시에 우리 집을 찾아오는 건 근래에 드문 일이었다.

그 소리가 너무나도 정겹고 반가워서 버선발로 나가 창을 열고 손님들을 맞이했다.


오랜만에 두 분이 함께 오셨는데, 집에 뭐 내놓을 건 없고 그윽한 커피 한잔 대접해 드릴게요.

알잖아. 우리 집 커피 맛집인 거.


산미와 고소함이 적절히 섞인 것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이 반영된 블렌디드 원두를 꺼내 그라인더에 넣었다.

원두의 통통 튀는 발걸음은 적적하던 집안의 음파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항상 어떤 바디로션을 쓰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원두의 살내음이 바람결에 스며들었다.

향기가 집안 구석구석 가 닿기도 전에 원두는 고운 가루가 되어 또 다른 여정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이제부턴 만만치 않은 여정이 될 거야.

우리 모두 다 같이 손을 꼭 잡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되더라도

우리가 함께라면 두렵지 않아.


나는 분쇄된 원두들이 고르게 담기도록 텝핑을 한 뒤, 적절한 힘으로 템핑을 한 번에 끝냈다.

제법 만족스러웠다.

서로를 단단히 잡고 있는 원두 가루 덕분에 표면이 매끄러워진 포터필터를

헤드에 끼우고 압력 기를 확인하며 에스프레소를 추출했다.


역시, 이 집 커피 맛있어.

입안에 오래 머금고 있고 싶은 커피 그리고 반가운 손님들의 기분 좋은 속삭임까지.

실로 오랜만에 완벽하고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손으로 턱을 괴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는 그 순간,

이목구비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초파리 한 마리가 내 시선을 빼앗았다.


후이훠이

손으로 쫓아내면 겁을 먹고 다른 곳으로 가겠지라는 나의 안일한 생각은

5분 여가 지나자 차츰 불편함을 넘어 공포로 바뀌었다.


손으로 바람을 세차게 일으켜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점점 내 몸 안쪽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턱을 괸 손, 그 손 바로 위에 있는 입술, 더 나아가 콧구멍까지.

이대로 가다간 그 조그마한 녀석이 쥐도 새도 모르게 내 몸 안으로 진짜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순간의 공포가 엄습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 왜 내 주위를 계속 날아다니는 걸까.

가늠할 수 없는 방향으로만 다니고 있어.

어떻게 쫓아내야 할까.

내가 이 공간을 벗어나는 것만이 최선일까.

그렇다한들 만약 내게 원인이 있는 거라면 계속 내 주위를 날아다니지 않을까.

이 작은 초파리 하나에 지배당하는 느낌이야.

그냥 손으로 움켜잡던지, 책으로 때려잡던지 잡아버리면 끝이잖아!


제멋대로 엮어진 생각그물은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공포의 대상이 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그것이 나의 통제 하에 놓이길 간절히 바라며 사력을 다해 잡고자 노력했다.

녀석도 눈치를 챘는지, 더욱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한 비행을 즐겼다.


잡으려 애를 써도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이 있는가.

나는 너무도 간절한데 내 맘과 정 반대로 흘러가는 상황을 보며 허탈했던 적이 있는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갑자기 닥쳐서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는가.



어쩌면 나는

초파리 그 자체에 공포를 느꼈던 것도,

초파리가 내 주위를 왜 맴도는지 원인을 파악하지 못해 공포를 느꼈던 것도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초파리를 마주하고 있는 내 감정과 생각들이 공포를 일으킨 것일 뿐.


그래. 초파리는 자신만의 비행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그가 날 해치려는 의도는 없었어. 단지, 내 주변에서 비행을 하고 있었을 뿐.

초파리의 비행을 보고 지레 겁을 먹은 건 나잖아.

내가 불안을 키웠고, 공포를 불러냈지.

늘 그랬어.

난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면 그것이 가진 무게보다 훨씬 확대해석하는 경향이 있어.

그리곤 일의 무게를 뛰어넘는, 내 감정의 무게에 짓눌려 고통스러워하지.

정말 고통스러울 정도의 일이 아님을 알아차리는 건 고통이 고스란히 내 머리를 짓이기고 지나간 다음이었어.




그렇게 내 속을 태우던 초파리는

커피잔에 빠져 옴짝달싹 할 수 없었고 더 이상의 비행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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