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하루의 냄새들
나는 음식을 좋아한다. 먹는 것을 사랑한다.
그래서 내가 직접 먹는 걸로도 모자라 남이 맛있게 먹는 모습도 즐겨 보는 편이다.
TV 속 사람은 한 숟갈 가득 입에 넣어 오물오물 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현재 본인이 느끼고 있는 오감을 총동원하여 시청자들에게 맛을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하나의 음식을 먹었을 뿐인데, 그 음식 안에 여러 가지 맛이 느껴진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다 문득, 그 사람이 떠올랐다.
1. 단맛
나는 단맛을 매우 좋아한다. 적절한 당분은 우리로 하여금 음식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준다고 생각한다.
담백함이 주는 차분함과 달리 달콤함이 주는 풍부함은 잠식된 감정을 달래주는 매력이 있다.
그 사람은 그런 매력이 있다.
본인은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순간마다 느낀다.
누에가 잎사귀를 갉아먹는 것처럼 나는 마음을 야금야금 갉아먹을 때가 종종 있는데,
그렇게 내 안에 자리한 구멍 난 잎사귀들은 그 사람이라는 따스한 햇빛으로 광합성을 한다.
그 사람 덕분에 나는 세상에서 외따로이 서 있지 않을 수 있다.
2. 신맛
나는 개인적으로 신맛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새콤함이 내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순간, 내 안의 모든 세포들이 놀라는 것 같은 그 느낌이 영 못마땅해서. 하지만 곧이어 뒤따라오는 깔끔함은 반갑다.
이 깔끔함 때문에 입맛 없는 여름날에 종종 새콤한 음식이 그리워지는 것 같다.
그 사람은 보고 또 보아도 그리워지는 매력이 있다.
문득, 갑자기 어느 순간에 보고 싶어 지는 그 마음이 그 사람을 소중하게 만든다.
만나서 즐거워지는 것뿐만 아니라 만나기 전 설레는 그 마음이 그 사람을 더 애틋하게 만든다.
3. 쓴맛
몸에 좋은 약이 입에는 쓰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쓴 약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미각을 깜박 속게 하는 이것저것 다양한 첨가물과 향들이 약의 일부가 되고 있다.
나를 비롯한 요즘 사람들은 쓴 것에 익숙지 못하기에 그것이 지닌 날카로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꺼려한다. 그래서인지 날 것을 희석시키려는 포장이 점점 과해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보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진짜 모습을 감출 수 있을까?
감추고 난 자리에 어떤 포장을 하는 게 좋을까?
나이가 들수록 겪게 되는 상황이 다변적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나를 포장할 줄 아는 것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처세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과대포장을 하게끔 만드는 사람은 나를 너무나 지치고 피곤하게 만든다는 것을.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비키니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툭 튀어나온 군살, 펑퍼짐한 뱃살, 숨겨진 튼살과 셀룰라이트까지. 기꺼이 내 모습을 모두 보여주어도 괜찮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모두 보아도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고맙지. 내게 보여주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그 마음이.
(음.. 글을 쓰면서 든 생각인데, 그럼에도 비키니보단 원피스 수영복을 편하게 생각할 수 있으니.. 그 사람의 의견도 다음에 만나면 물어보긴 해야겠다 :D 하하)
4. 짠맛
소금이 인류의 식탁을 바꿔 놓았을 만큼 중요한 위치였던 화려한 과거이력에 비해 요즘은 성인병의 주범으로 낙인찍혀있는 건 왠지 모르게 슬플 일이다. 나트륨 일일 섭취 권장량이 심심찮게 뉴스나 신문에 등장하게 되면서 '웰빙=싱거움'이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소금을 포기할 수 없다. 짠맛을 포기할 수 없다. 이미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지금 짠맛이 역풍을 맞이하는 건 아마도 적정함을 잃은 남용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인간관계도 그러하지 않을까.
내 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건 분명 '나 참 잘 살았구나' 하는 기특함이 들게 할 수도 있으나 그들 중 어떤 이는 나에게 언젠가 후회를 선사할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이라는 음식에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심심하지 않게 간간히 소금소금한 매력을 발산하는 사람 몇몇이 훨씬 내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리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인생을 조리해 나감에 있어 그 사람을 소금소금할 수 있음에 다시금 감사함을 느낀다.
5. 매운맛
앞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청양고추를 된장에 찍어먹는 행위를 꽤 좋아한다. 매운맛이 퍼질 때의 그 쾌감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잠시 스키너 상자의 쥐가 된 나는 행위를 꽤 오래 반복한다. 중독성. 그것은 매운맛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 사람과의 대화는 중독성이 있다.
각자 걸어온 인생의 발자취는 물론,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나 일상에 대해 종종 얘기하곤 한다.
서로에게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해 잠시 생각하고, 생각한 바를 피력하고, 서로의 의견을 듣고.
이런 대화에서 느껴지는 지적인 쾌감은 꽤 짜릿하여 주기적으로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건전한 중독은 인생의 윤활유가 된다.
오늘은 왠지 그 사람에게 맛있는 저녁 한 끼를 대접하고 싶어진다.
도란도란한 대화를 나누며, 한 주의 시작 함께 파이팅 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