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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울싸람 Jun 27. 2021

사회적 알람이요? 저는 늦잠 잘래요.

붐비는 퇴근시간. 빈자리를 사수한 운수 좋은 날이었다. 삼성역에서였나, 다소 앳된 얼굴에 빳빳한 정장을 갖춰 입은 세명의 직장인들이 앞에 섰다. 주위 눈치를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회사 뒷담을 하는 듯했는데, 그게 싫지만은 않은 듯 들뜬 얼굴이었다. 시선을 다시 휴대폰으로 내리다가, 바로 앞에 서있던 사람이 사원증을 매고 있는 걸 발견했다. 빼는 걸 까먹었나 문득 관심을 갖다가, 일부러 걸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무관심이라는 예의를 차렸다. 10년 전 첫 직장의 인턴 시절의 본인과 같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말이다.


대학교 졸업을 앞둔 당시에 주변은 취업 준비가 한창이었다. 자격증, 시험, 대외활동 등, 그중 가장 인기 종목은 인턴이었다. 취업과 가장 직결되고 임금을 받으며 회사를 경험하는 게 큰 장점이었고, 필자는 주변에서 빨리 인턴이 된 경우였다. 첫 출근날 회사의 높은 건물과 삐까뻔쩍한 내부가 줬던 위압감은 곧 자랑감이 되었다. 도서관에서 토익 공부를 하고 있을 동기들보다 더 일찍 인턴이 됐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사원증을 빼지 않고 퇴근을 한 건 그 때문이다. 매일은 아니고 종종, 퇴근 후에도 사원증은 금메달처럼 목에 걸려있었다. 사람이 많은 2호선까지 걸고 있다가, 집 근처에 오면 실수로 달고 온 시늉을 하며 빼고 천천히 가방에 넣었다. 지금은 어떻게든 사원증을 숨기고 다니려 하지만.. 그땐 그럴 때였다.



그때가 그럴 때였듯이, 우리에게는 알람처럼 사회적인 '때'가 있다.


취업 걱정 이전에 대한민국 10대에게는 좋은 대학교가 목표인 때이다. 수학을 잘하든, 국어를 잘하든, 피아노를 잘 치든, 운동을 잘하든, 모든 교육과정은 그 분야에서 유명한 대학교를 가기 위해 짜여진다. 20살이 될 때 대학교에 가지 못했다면(혹은 않았다면) 사회가 정한 알람에 맞춰 깨어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돈벌이는 하고 있는 필자의 주변은 결혼이 화두인 때다. 만나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 계획에 대한 질문이 당연해지고, 만날 사람은 사전에 결혼하기 괜찮은 사람인지 알아본다. 소위 말하는 결혼 적령기에 사랑이든 배경이든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상대를 만나면 그 적령기를 놓치는 리스크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나이는 사회에서 정한 유통기한처럼 되어, 시장에서 본인이 팔리지 않게 될까 전전긍긍하는 주변인이 늘어가고 있다.


때가 더 지난 친한 선배의 최근은, 결혼을 안 했다면 비정상이라는 스티커가 붙는 시기다. 작은 실수와 단점도 '그러니 결혼을 못했지'로 귀결되거나, 별다른 하자가 없어도 '안 보이는 하자가 있으니 결혼을 못했겠지'라는 가상의 원인이 생긴다. 주변 기혼자들은 비싼 영유(영어유치원)를 보낼지 고민하는 시기라며, 자극적인 넷플릭스를 혼술과 함께하는 자유에 부러움을 비치지만, 끝엔 항상 외롭지는 않냐며 쓸쓸함을 강요한다.


선배라고 칭하기엔 다소 죄송한 전 직장 매니저는, 자녀 대학을 고민하는 입시 걱정의 시기로 회귀했다. 명성 있는 대학에 가지 못할 성적이라면, 자금을 마련하여 어떻게든 유학을 보내줘야 하는 그런 시기. 그러면서도 골프를 치러 가끔씩 필드는 나가줘야 그의 주변에서 인정받을 수 있단다.


그다음은 필자 부모님의 때인데.. 자녀의 출가와 성공이 주된 지표일 것 같아, 자신이 없어서 생략.



이 같은 '사회적 알람'이란 몇 년 전 유명 강사 김미경 씨가 언급한 단어인데,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 인정받는 시기'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다.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시선의 변두리를 추구하는 필자에게 인상 깊었던 단어였다. 그리고 최근 결혼에 대해 묻는 주변에 질려 많이 떠오르는 단어다.  


푹푹 찌는 날씨에 거래처에 가는 길, 친한 선배가 "벌써 6월이고 너도 곧 있으면 또 한 살 먹는데, 너 결혼 안 할 거냐?"라고 물었다.
더위 때문일까, 별거 아닌 질문에도 예민하게 대답했다. "선배, 저 나이 먹는 건 맞는데 그거 때문에 억지로 찾아서 하고 싶진 않아요. 인생에 중요한 결정인데.. 나이 때문에 급히 하다 보면, 글쎄요, 무조건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나중에 의구심은 몇 번 품을 것 같아요. '이 사람을 사랑해서 결혼한 건지, 결혼하려고 사랑한 건지..' 같은? 또 싸우기라도 해 봐요. 그때 버티고 결혼하지 말걸이라는 후회도 할 것 같아요. 그건 배우자에게도, 의사결정을 한 저에게도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고요. 전 자녀 계획도 별로 없으니까.. 제가 생각들 때 알아서 할게요."
갑자기 장엄한 대답에 당황한 듯한 선배에게 다시 미안해져서, "소개팅 안 시켜줄 거면 담배 마저 피고 얼른 가시죠!"라며 멋쩍게 웃었다.

 

선배의 질문이 의도적인 공격이 아닌 것도 알고, '사회적 알람'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작은 지각은 몇 번 했지만서도 이에 맞춰 살아온 쪽에 속한다.) 하지만 분명히 사회적 알람은 자신만의 알람을 방해한다는 데서 해롭다. 주체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길을 닦을 겨를도 없이 사회가 정해준 길을 가게 되고, 이는 알람을 맞추지 못할까 염려하는 불안감만 증폭한다. 반면 사회적 알람을 무시하고 본인의 알람을 세운다면, 불안함은 자극이 되고 주체적인 삶에 대한 재미를 느낀다. 목표, 해야 할 일, 방법은 본인이 세웠기에, 입시, 취업, 결혼과 같은 단기적 목표를 달성하고도 방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당당히 사회적 늦잠을 자려고 한다. 여느 사람들처럼 불안에 쫓기는 삶을 살아왔으나, 요즘엔 '소요시간'이 중심인 본인만의 시계에 맞춰 사는 삶을 그려가려 한다.



내일도 누군가 사회적 알람을 켜준다면 의연히 답해야지.

"저는 늦잠자고 나중에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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