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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i Kim Aug 15. 2019

순례길을 마친 내가 음악 스타트업에 들어간 이유

엔터테인먼트 입성기

입사한 지 막 3일이 지났다.

지금이 아니라면 놓치고 말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이곳에서 순간순간 느낀 점들을 쌓아 나가고자 한다. 미래의 나에게, 앞으로 성장해 나갈 회사에 영감과 반성과 자극의 원료가 되었으면 좋겠다.




4월 첫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사회인이 되어 처음 선택한 직장이자 애정과 열정을 갖고 일했던 곳, 북저널리즘이다. 2년간 얻은 소중한 배움과 인연을 뒤로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리턴 티켓이 없는 여행의 출발지는 프랑스였다. 대학 시절 교환학생을 보냈던 나라, 내게 독립의 기쁨을 알려준 곳이다. 거기서부터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파리의 레스토랑에 앉아 페이스북에 ‘퇴사 후기’를 올렸다. 나를 믿고 지지해 준 직장 선배와 동료들,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콩고르드 광장을 걷고 있을 때 페이스북 메시지를 한 통 받았다. 엔터테인먼트사 대표님이었다.


대표님과는 인연이 있었다. 작년 인물 인터뷰를 위해 만난 적이 있다. 퇴사했다는 글을 읽었는데 궁금한 점이 있어 미팅을 갖고 싶다고 하셨다. 여행이 끝난 뒤 찾아뵙기로 했다. 솔직한 마음으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당시 내가 던졌던 질문과 관련하여 의견을 듣고 도움을 얻고자 연락을 주셨나 보다, 하는 생각과 면접 제안이었다. 생각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당장 내 앞에는 끝의 기약이 없는 여행기가 말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집중해야 할 대상은 진로나 경력 단절의 두려움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여행의 목적에 충실하기로 했다.


800킬로미터를 걷는 순례 여정을 끝내고 런던에 있을 때였다. 대표님께 메시지를 보냈더니 1분 만에 답장이 왔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회사를 방문했다. 작년 12월만 해도 예쁜 펜션을 연상케 하는 연남동의 단층 건물이었는데, 합정의 4층짜리 건물로 이사와 있었다. 이야기가 오가고 이틀 뒤 입사 제안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싶다는 연락을 드렸다.


회사 분들을 다시 만났을 때 생각보다 빨리 의사결정을 내려 놀랐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계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뭐라고 답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정말 나는 두 번째 직장이라는, 중요한 인생의 결정을 과감하고 충동적으로 내린 것일까? 곱씹을수록 그건 아니라는 확신이 섰다. 두 달간 유럽 땅을 걷는 동안 단 한 번도 다음 직장이나 먹고사는 일, 사회적 지위와 명예 따위를 걱정해본 적은 없었다. 대신 그날 무엇을 먹을지, 어디서 잠자리를 해결할지, 남은 여유 시간 동안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 불확실한 미래보단 옆에 있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데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뭘 할 때 재미를 느끼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눌 때 가슴이 뛰는지, 갖고 있던 선입견과 나를 짓누르던 압박감은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스팔트길이 거의 없었던 순례길
10kg 넘는 가방 메고 침낭 메고 스틱 들고 정말 열심히 걸음


사회적 동물로서 습득한 인정 욕구를 거두고 나니 나라는 사람이 잘 보였다. 다양한 욕망과 이중적인 모습을 갖고 있었다. 누구나 ‘외향적이거나 내향적인 사람’ ‘집돌이거나 밖에 나가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사람’ ‘욕심이 없거나 야망이 있는 사람’ 등 하나의 잣대로 상대를 정의하려는 습성이 있다. 그렇게 하면 파악하고 재단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건 자기 자신에게도 통용된다. 나라는 사람을 일정한 기준에 맞게 정의하고 나면, 인생의 계획을 세우는 일이 수월해진다. 삶에는 어느 정도의 학습된 단계가 있다. 모호한 길을 걸을 때의 불안감을 견디지 못할수록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단정하려는 본능이 우리에게는 있다.


여행은 내게 결론을 내리지 말라는 교훈을 줬다. 실제로 입사 결정은 하루 만에 이뤄졌지만, 그 뒷단에는 나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라거나 '업의 가치’라거나 ‘사회적 욕망’이라거나 ‘금전적 성공’이라거나, 하나의 이유에 이끌린 결정이 아니었다. 게임 캐릭터의 성격이나 능력치가 어느 하나에 치중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무수한 이유가 결정을 이루는 바탕이 됐다.


1.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남들보다 특별히 좋아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우니까. 그러나 남들보다 두드러진 애정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서 선택지에서 제외될 필요는 없다. 선택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혹은 화장을 하는 동안, 집안일을 하는 동안 블루투스 스피커를 틀어놓는 나의 모습을 생각했다. 음악은 내가 부담 없이 일상에서 즐기는 문화 활동이다. 좋아하는 것을 세련된 문화 콘텐츠로 만들고, 확장시키는 일에 동참하고 싶었다.


2. 대표님은 오랜 고민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양분화라는 고질적 문제를 겪고 있다. 대형 기획사의 메가급 가수, 아니라면 생활고를 겪는 이름 없는 가수들이다. 대형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갔더라도 발탁되지 못한 채 수년의 허송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이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길을 걷기에는 상처가 작지 않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음지의 실력 있는 가수를 대중에게 드러내고, 반드시 가수가 아니더라도 음악인으로서 생존할 수 있는 문화 생태계를 만들고자 이 일을 시작했다. 회사를 설립하고 빠르게 성과를 일궜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아리송했다. 여러 가지 이슈가 일어나는 동안,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은 기존의 모델을 답습하는 게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성공 방정식을 쌓아 올리는 혁신가’라는 생각이었다. 편견을 거두고 진실을 볼 필요가 있었다. 엔터테인먼트라는 특정한 분야지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갈증이 있는 스타트업들이 참고할 인사이트가 분명 있을 거라 믿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그 진실을 봤다고 생각한다. 진정성은 가린다고 가려지거나, 꾸며지지 않는다. 나는 경험도 많지 않고 미숙한 사람이지만, 상대의 고민과 열정이 진실하다고 느꼈다. 업계의 시스템을 해결하겠다는 문제 정의와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법에 마음이 동했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성숙한 태도를 보이려고 노력한다. 논란도 있고 어려움도 있지만 그 과정 속에 교훈이 있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100년 동안 혁신 이미지를 지키고 있는 디즈니처럼 사람들에게 환상을 주는 회사가 되고 싶다는 말에도 마음이 설렜다. 그동안 만나 온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모습과 겹쳤다. 이곳은 엔터테인먼트계의 스타트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 엔터 산업의 규모 자체가 큰 편은 아니지만, 이전보다 좀 더 큰 판에서 ‘뛰어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어쩌면 방탄소년단 같은 블록버스터 아이돌을 키워내는 데 일조할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소소한 위로가 되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꾸준히 활동할 그릇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허무맹랑한 상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러 갈래에서 온 이유가 나를 이 회사의 일원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합류했다. 3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30일의 시간을 보낸 것처럼 속도감이 빠르다. 이곳에서 앞으로 나는 어떤 성장을 하게 될까. 발을 담근 지 얼마 되지 않아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있다. 하지만 방향성만큼은 확실하다. 어려움도 있겠지만 성숙한 태도를 보이려고 한다. 지난 겨울 들었던 대표님의 인터뷰처럼 “힘든 일들로 완전히 꺾이지만 않는다면, 성장 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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