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풀>을 읽고 떠올린 사적인 일화
<파워풀>을 읽었다. 넷플릭스에서 14년간 최고인재책임자로 일한 패티 맥코드가 넷플릭스의 인재 철학, 운영 방식을 기록한 책이다. 2018년형 스타트업계 바이블이라 통할 정도로 평판이 좋았던 책이라 기대감이 컸다. 얇은 분량인데도 이틀에 걸쳐 공부하듯이 읽었다. 내가 놓친 것은 없는지, 그래서 DVD 대여 업체가 어떻게 구글에 대적할 만한 미디어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지 배우려고.
결론은 유용하지만 불편했다. 물론 밑줄 치고 따로 적어 둔 구절도 많다. 앞으로 들어갈 회사에 적용할 팁들도 얻었다. 하지만 저자는 실력 있는 직원을 데려오고, 직원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회사에서 내쫓으라고 말한다. 나는 이런 공룡 기업들에서 살아남는 데 실패한 다수의 삶에 더 관심이 간다. 시간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줄 알고, 프로젝트마다, 분기마다 계단 오르듯 성과를 내고, 무지막지하게 똑똑한 인재들이 아닌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들의 자존감은 어디서 회복돼야 할까.
하지만 군더더기를 넣을 수 없는 경영서이기에 그런 걱정은 불필요하다는 걸 인정한다. 마음이 불편해지기는 했으나 공감이 가는 조언도 있었다. 아니, 공감 정도가 아니라 진리처럼 느껴지는 말이 있었다. 극도로 솔직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도 엄청나게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넌 항상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다른 사람들이 의견을 낼 기회가 없어.” 그리 기억에 남을 만한 피드백은 아니다. 상처가 되는 직언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하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고 머릿속에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시절, 나도 딱 저 정도 온도의 비판을 받은 일이 있다.
30명가량의 학생들이 원형으로 빙 둘러앉아 세 시간 동안 진행되는 토론 수업이었다. 학점을 잘 따는 방법은 세 가지였다. 적극적으로 열렬하게 토론에 임하거나, 남들이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소설 속 장치나 의미를 발견해 내거나, 평범한 아이디어를 매우 논리 정연하게 설명하거나. 나는 언제나 두 번째와 첫 번째 방법을 섞어 썼다. 지분을 따지자면 두 번째 방법이 80퍼센트쯤 됐다. 학점을 잘 따기 위한 목적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뭔가를 생각하고 나름의 논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발표하는 일이 무척, 무척이나 재밌었다. 우리 몸에서 호흡 기관의 역할이 생명을 유지하는 일이듯, 나의 역할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뽑아내 ‘이봐요. 나 좀 봐요’ 하며 수업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인 것만 같았다. 맞다. 자뻑이다.
그 수업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학생이 한 명 더 있었다. 나보다 여섯 살 많은 국문과 오빠였다. 그 오빠는 맨몸으로 뉴욕에 건너가 2년간 장사를 한 히스토리를 지녔고, 패션과 영화에 조예가 깊고, 자신만의 마이너한 예술 취향이 있는 사람이었다. 경험이 풍부한 만큼 사람을 대할 때도 여유가 있었다. 내가 스스로의 기발함에 자아도취해서 심장이 뛰다가 그 심장박동에 어택 당할 정도의 흥분을 느끼며 머릿속에 든 것을 마구 뱉어낼 때도 그 오빠는 늘 차분하게 듣고, 우아하게 의견을 달았다. 어떤 경우에는 매너 있게 반박하기도 했다. 비판의 당사자인 나에게 중요한 것은 비판 자체보다 그의 매너 있는 태도였다. 내 의견에 약간의 태클을 걸기는 했지만,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남들 앞에서 쪽을 주지 않았으니 괜찮아. 당시 내 그릇은 그 정도였다.
그날도 나는 속사포처럼 떠들어댔다. 발표가 끝나자 그분이 말했다. “세리씨는 본인의 생각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피드백이나 내용에 대한 첨언이 아니었다. 그분이 지적한 것은 사람들을 바라보고는 있지만, 사실은 나만의 안드로메다 세계에 빠져 있던 나의 태도였다. 내가 뭘요? 나한테 왜 그래요? 이렇게 순진무구하게 대꾸할 수는 없었다. 나는 우리 수업의 호흡기인데 체면을 구기면 쓰나. 하지만 참을 수 없을 만큼 얼굴이 화끈거렸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당한 창피를 토로하고 그 오빠의 무례함을 욕했다. 한 시간 반 동안 전화기가 뜨거워질 때까지 그렇게 나의 모욕감을 씻어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다음 수업부터 나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말을 꺼내기 전에 내 생각을 다시 정리해 봤다. 그러니까 손을 드는 빈도가 낮아졌다. 말을 줄인 대신 다른 생각을 들을 시간이 늘었다. 나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 갔다. 머릿속으로는 생각을 되새김질하면서 동시에 다른 생각들을 들었다. 내 생각은 머릿속에서 자동 편집됐다. 다른 이들의 의견이 도구가 돼 줬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때 들은 비판이 문득문득 생각난다. 5년 사이에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해외 살이도 해보고, 개개인의 주관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뚜렷한 집단에서 사회생활도 해보고, 다양성이 분출되는 토론 활동도 해 봤다. 상황은 다 달랐지만 내 생각을 재고하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일은 언제나 도움이 됐다. 되지도 않는 자뻑에 빠지려 할 때마다 국문과 오빠의 말이 나를 구해 줬다.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담백하게 해 준 그 말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톡 쏘아붙인 말도 아니고, 악의가 깔린 말도 아니었다. 내게 필요했던 극도의 솔직함이었다.
그때는 그 오빠가 너무 미웠다. 뭐 그리 잘났다고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나 따지고 싶었다. 돌아보니 망신 준 것이 아니다. 누가 뭐라고 생각하든, 상대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질을 용기 있게 조언한 것이다. 2년 전 패션 매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다. 남의 눈치 안 보고, 담백하게 자기답게 사는 그 오빠를 다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