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경험의 분절을 이야기하다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유현준 교수는 서울 공간의 분절을 이야기한다. 미국만 해도 공원과 공원의 거리가 도보 10분을 넘기지 않는데, 서울의 하늘공원-선유도공원-여의도공원-한강시민공원-효창공원-남산공원-청계천-서울숲공원-보라매공원 등은 각각의 거리가 평균 4킬로미터 남짓이다. 걸어서 한 시간 거리다. 마음 먹고 걸어간다 치더라도 도시 소음과 정신없는 경적 소리 때문에 기분 좋은 경험을 할 수가 없다. 두 달 동안 유럽을 돌아다니다가 서울에 왔을 때, 새삼스레 느낀 것도 차도와 인도 면적의 불균형이었다. 차도와 인도의 면적 비율 차가 크지 않았던 유럽에 반해, 서울의 차도는 무척 넓었다. 그래서 인도로 걷다 보면 마주보는 사람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나 어깨빵 때문에 인상이 일그러지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물론 지하철을 이용해 공원에서 다른 공원으로 이동할 수 있다. 공원뿐 아니라 우리나라 지하철 시스템은 세계 최고라 자부할 만하다. 하지만 수십만 년 동안 축적된 경험으로 빛의 자극을 받는 주광성 동물이 된 인간에게 답답하고 인위적인 지하철, 엘레베이터, 택시 등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공간이 된다. 교통 기관에 올라타는 순간 우리는 경험의 분절을 경험한다. 내가 독립을 고민할 때도 전세값 다음으로 가장 고려한 부분이 주변에 걸어서 갈 만한 한강이 있는가였다. 많은 사람들이 철저히 혼자인 사적인 공간을 지향하지만, 우리의 DNA에는 경험이 연결되는 넓고 자연스러운 공적인 공간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 같다. 결론은 그러니 외국 나가 살아야지가 아니라, 도시 공간 효율화만 외치기 전에 돗자리 깔고 누워서 자연을 즐길 만한 공간을 마련해 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