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셋째 주 목요일
사이언스 픽션의 대가인 테드 창의 두 번째 작품집이다. 테드창은 미국 브라운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과학과 언어, 소통과 삶의 긴밀한 관계를 엮어 낸 1998년작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2016년 영화 <콘택트>로 개봉됐다.
아홉 편의 단편을 묶은 이번 작품에서도 테드 창은 진보하는 테크놀로지 속에서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질문한다. 과거와의 재회, 뇌 해부를 통해 밝혀 낸 종과 문명 소멸의 위기, 인간 자유 의지에 대한 의심,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 디지털 기억에 대한 소고 등 우리가 당면한 과학적 이슈들을 탄탄한 서사로 풀어낸다. 이 주제들은 과학적 이슈일 뿐만 아니라 인류와 개인이 면밀히 고찰해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 책을 절반만 읽은 두 명과 그 절반의 절반을 읽은 한 명이 이야기를 나눴다. 예술, 인문, 언론을 전공한 이른바 ‘문송한’ 세 명의 대화인 점을 밝힌다. 내용 중 과학과 관련한 부분은 사실과 다를 수 있다(각자가 해석한 뇌피셜에 의했다). 소설 자체보다 소설에서 파생한 주변부 이야기들로 대화를 확장하기도 했다.
* 소설 특성상 스포가 있지만 참여자들의 독서량이 전체의 절반이므로 감안하고 읽을 만하다.
A : 살까 말까 고민하면서 서점에 갔어요. 일단 한번 읽어 보고 결정하려고. 첫 챕터인 <성인과 연금술사의 문> 읽고 ‘이거다!’하고 샀거든요. 근데 집에서 <숨> 읽다가 잤어요. 아, 1장에 낚였어요.
G : 1장은 엄청 쉽게 읽히더라고요. 과학을 어쩌면 이렇게 환상 문학처럼 포장할 수 있는지. <숨>에 비하면 정말 소설답죠.
C : <숨>은 당최 뭔 소린지 이해가 안 가요. 대충은 알겠어요. 정확한 주제는 모르겠는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대충은 알 것 같아.
A : 그 대충이 뭐예요?
C : 소설 속의 세계관은 모두 창조된 세계관이에요. <숨>이라는 작품의 세계관은 우리가 살아 숨 쉬는 명확한 규칙과 시스템이 존재하는 세계관이에요. 공기가 지하에 저장돼 있어요. 사람들은 지하와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 충전된 허파를 갈아 끼우며 살고 있죠. 그런데 어느 날 이 시스템에 오류가 생겨요. 새해 첫날 정오를 알리는 포고꾼이 1초 느리게 알람을 울린 거예요. 그 원인이 공기와 관련됐다는 가설이 제기되죠. 시계 배터리가 닳은 것도 아니고 시계 자체에 기계적 결함이 생긴 것도 아닌데, 사람들의 뇌가 1초씩 느리게 세상을 인지하면서 시간의 오차가 발생했다는 거예요.
G :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소린가요?
C : 이건 과학자인 화자의 추측이에요. 화자는 본인의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장치들을 써서 자기 뇌를 해부하기 시작해요.
A : 소설의 도입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공기가 생명의 원천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시작되거든요. 숨을 쉴 수 있는 건 기압 차이 때문이다, 기압 차가 없어지는 순간 인간의 사고는 정지하게 된다고요. 그런데 이 우주가 막혀 있다는 걸 화자는 발견하게 돼요. 한 마디로 우주에 끝이 있다는 걸 발견한 거죠.
G : ‘대체 무엇이 사람의 뇌 속 공기의 흐름을 늦출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의문을 떠올린 순간 유일한 해답을 깨달았다. 우리의 하늘은 무한하게 높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의 우주는 열린 우물이 아니라 봉인된 방이었다.’ 여기 이런 대목이 있네요.
C : 우주 공간이 밀폐되어 공기 순환이 느려졌다. 지하와 지상의 공기압 차이가 줄어들면서 호스를 타고 뇌로 흐르던 공기의 유입량이 현저하게 적어졌다. 그 결과 인간의 인지 속도가 느려졌다. 인식과 인지 능력이 떨어짐으로써 멀쩡한 시간을 1초씩 느리게 받아들이게 됐다. 그리고 이 기압이 평형 상태에 도달할 때 인간과 문명과 우주는 완전히 소멸한다. 이거군요. 뭔가 ‘related 기압’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 이해가 되네요.
G : 그럼 결말이 뭐예요? 그래서 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
C : 이 지점에 작가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등장하죠. 지금 이 소설의 형식은 우주의 다른 탐험자들을 위해 과학자가 남긴 서한이거든요. 이곳에 와서 자신의 글을 발견하기를 바라면서 기록을 남기는 거예요.
G : ‘과학자는 평형 상태가 모든 우주의 운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으며, 다른 우주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미래의 다른 문명을 향해 메시지를 남긴다.’ 출판사 서평과 일치하네요.
C : 포고꾼 이슈가 있기 전에 기억이 실제로 뇌에 존재하는지가 이 세계에서 화두에 올라요. 과학자가 해부를 시작하게 된 일차적 욕구이기도 하죠. 과학자는 ‘우리의 기억은 삭제 과정이 기록 과정보다 더 어려울 필요가 없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해요. 사람의 모든 기억은 뇌에 저장된다고 주장하는 학파와 정반대 입장이에요. 그래서 미래 세대를 위한 기록을 남기며 소설은 끝이 나요. 나름의 수미상관 구조인 거죠.
A : 기억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해서 기록으로 끝난다는 건 알겠어요. 근데 중간에 이야길 끌어나가는 제재는 공기와 기압이거든요? 이 두 가지가 무슨 상관인 거죠?
G : 제목에 답이 있을 것 같아요. 숨이 상징하는 건 삶인 거죠. 숨을 쉬는 건 삶의 전제 조건이자 살기 위한 본능이니까요. 뭔가를 남기고 기억하는 행위를 우리의 삶과 연관지은 게 아닐까요?
C : 기록을 남기는 것은 숨을 쉬는 것만큼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확대해 말하자면, 기록이 문명의 시발점이다?
A : 어떤 사람들은 지하의 공기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고 믿고 이를 위한 장치를 개발해요. 그렇게 지상과 지하의 기압 차이를 벌려 공기를 순환하고, 인간의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사람들이 살아갈 환경을 만든다고요. 과학자는 이 모든 걸 인간이 제어할 수 없다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공기는 균등하게 배분될 것이라고 강조하거든요. 압력의 종말은 동력의 종말, 사고의 종말이 될 거라고 확언하고 있어요.
C : 그래서 글을 써야 한다,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거군요.
A : 재밌는 건 인간을 그저 수동적으로만 묘사하지도 않아요. 기업 차이가 있어 인간이 존재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인간이 몸을 움직이고 사고함으로써 기압 차이가 발생한다고도 말하거든요.
G : 기압 차이로 생명이 유지되는 것을 과학적 사실로, 인간의 움직임과 사고 행위를 인간의 고유한 특징으로 볼 수 있겠네요. 그렇게 본다면 과학과 인간의 상호 작용을 말하는 거네요.
A : 그렇죠. 게다가 이 사람은 미래 문명의 탐험자들을 위한 기록을 남기고 있어요. 테드 창은 과학의 고도화와 인간 삶의 관계를 <숨>에서 비유한 게 아닐까 싶어요. 과학의 위험성과 한계를 지적하지만, 이것이 또 다른 문명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는 통섭적 관점으로요.
C : 제가 느낀 소설의 핵심은, 문명이라든지 문화라든지 내가 느끼고 보고 먹고 하는 모든 것들이 기억으로 존재하고, 그 기억이란 것이 왜 기록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합리적이고 타당한 근거를 제시한다는 거예요. 세상은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고, 선택의 문제가 아닌 당위의 문제다,라고.
A : 정말 대단한 작가다. 이 짧은 단편 하나로 40분을 얘기하게 하지?
G : 만약 우리가 이과였다면?
A : 이과가 없는 게 한스럽네요.
C : 하지만 우리가 문송하지 않았다면 이 얘긴 10분 만에 끝났을 수도 있어요. (웃음)
A : 기초적인 이해가 있는 과학도들이 보기에 이 소설은 얼마나 훌륭할까 궁금하네요. 저는 뭐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 논리를 소설로 풀어낸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르겠어요.
C : 어마 무시할 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너무 허무맹랑하게 볼 수도 있고. 말 그대로 ‘소설 쓰고 있다’고요. 어찌 됐든 <숨> 자체가 그렇게까지 감흥이 오진 않던데요. 자기주장을 위한 논리 구조를 끊임없이 만들어 나가는 느낌이었어요. 한편으론 어떻게 결론을 맺을지 보이잖아요. 그래서 좀 지루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과학적 배경을 동원하고 있구나.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너무 문송하지만 글은 그닥 재밌지 않다. 이런 느낌?
C : 그래서인지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정말 재밌었어요. 일단 이야기가 있고요, 길어서 좋더라고요. 외계 생명체와 대화를 나누는 콘셉트의 <콘택트> 원작도 테드 창의 소설이라니 확실히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 같아요.
A : 결론이 있는 문제 제기는 아닌데요, 지금 전 세계 화두가 인공지능이잖아요. 이 소설의 세계에서는 인공지능이 어느 정도의 수준을 이룬 상태라는 점에서 현실의 연장선이라는 느낌이 강하더라고요. 지금 우리는 로봇도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로봇에게 인격을 부여해도 될까와 같은 철학적 논의가 한창인데, 이 세계에서는 그런 과정을 다 넘어선 것 같았어요. 감정이 있는 로봇을 키워도 봤는데 결국 시장의 주류는 감정이 배제된 로봇을 상용화하는 회사가 차지하거든요. 그런 회사가 힙하고 트렌디한 곳으로 묘사되고. 그러니까 여기서 나온 미래 사회는 현실의 미래 시점인 건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인지 궁금해요.
C : 지금보다 훨씬 나아가긴 한 거죠. 알파고가 말을 하고 사람이랑 교감할 수는 없잖아요. 소설 속 디지털 유기체인 디지언트들처럼 학교에 가 공부한다거나, 사회화 과정을 거치고 있지도 않고요. 하지만 한편으론 이 디지언트들과 우리 인간은 뭐가 다른지 의문을 던지는 것 같았어요. 보통의 로봇 영화들도 그렇잖아요. <her>이나 <her>의 전신인 <I’m Here>이 로봇의 사랑에 대해 얘기하듯이요. 그런 맥락에서 나라는 존재도 과연 성( 性)에 대해 알고 태어난 걸까 의문이 들더라고요.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이 모든 것들이 학습된 게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G : 우리가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한번쯤 고민하게 만드는 거군요. 감정적인 걸 다 빼고.
C : 그 감정조차도요. 소설에서도 로봇이 결국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얘기하거든요. 마르코라는 디지언트는 학습을 통해 사람과 사랑하길 ‘선택’하죠. 성 시장의 제품이 될 수도 있지만 본인은 괜찮다고 말해요. 인간인 여자 주인공은 평생 애정을 갖고 키워 온 아이들을 그런 퇴폐적인 직업으로 빠뜨리자는 거냐며 반대해요. 소설은 ‘로봇이 사랑을 느낄 수 있는가’에 대해 묻고 있어요. 그런데 그 판단의 유일한 주체가 정말 인간뿐인지 또다시 질문을 던져요. 여기서부터 나의 것이라 믿어 온 생각, 관습, 감정이 고민의 대상이 돼요.
저는 개인적으로 어려서부터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전통에 딱히 반발감이 없었어요. 어릴 때의 삶도 그랬고 남중, 남고를 나왔거든요.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성이란 존재에 대해 과학처럼 신비스러운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 가운데 남성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이상한 편견과 선입견이 여성에 대한 제 인식을 완전히 지배했던 것 같아요. 사실은 일종의 학습이었는데 말이죠. 만약 환경적으로 여성들과 친하게 지내거나 누나가 있었다면, 저는 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수도 있어요. 그런 면에서 이 소설도 로봇이라는 애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만든 뒤에 그들의 존재성과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인간에 대입해 생각해보도록 만드는 것 같아요.
A : 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재밌게 읽었는데, 본질적으로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리모컨이 등장하는데 사람이 누르기 1초 전에만 불빛이 반짝거려요. 이 불빛을 안 반짝거리게 하거나 반짝거리게 하기 위해 타이밍을 조절할 수가 없어요. 별별 짓을 다 하고 로또 번호를 예상하듯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봐도 그 규칙이 깨지지 않아요. 리모컨을 누를지 안 누를지, 언제 누를지 결정하는 존재는 사람이지만 불빛을 제어할 수는 없는 거죠.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에서도 로봇을 만든 건 인간이지만, 그들의 생각과 행위까지 인간이 조절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현재 우리의 의지는 정말 자유 의지일까 싶어요. 우린 자유 의지로 원화는 회사에 들어갔고, 여행을 하며 비로소 진정한 자아를 발견했고, 이런저런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나의 삶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건 자유 의지가 아니라 어떤 우주적 구조에 의해 설계된 착각일 수도 있는 거죠. <숨>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새 허파를 끊임없이 공급받아야만 살 수 있는 환경은 자신이 결정한 게 아니잖아요.
A : 저는 로봇이나 인공지능에 그렇게 관심이 있진 않아요. 로봇이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특히 멀게 느껴져요. 뉴스만 봐도 그렇잖아요. 다 상업적인 이야기만 쏟아지지. 사람한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다각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안 주는 것 같아요.
G : 전 인공지능의 목적은 이용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사이에 필요한 걸 넣어주는 거라고 보는데요. 페북에도 AI가 들어가서 필터링해주고 필요한 게시물 추천해주잖아요. 이걸 우리가 인식할 수 있다면, 그래서 존재론적인 의문까지 제기된다면 인공지능의 기술이 떨어진 게 아닐까 싶어요.
A : 추상적인 얘기 말고 인공지능의 목적과 그 역할에 대해 실질적으로 보여 주는 소설이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예요. 보모가 기계에서 인간으로 바뀌자 아이의 정신이 이상해져서 병원에 입원시키거든요. 전문가들은 사람과의 정서적 유대 부족이 원인이라 분석하고 2년 동안 아이를 집중적으로 보살피지만, 결국 기계 보모 밑에서 신체와 정신이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에요.
C : 인간이 짱이 아니라는 거네요. 생각에 전환을 일으키는 내용이군요.
G : 늑대 소년도 떠오르고요.
C : 결론은 없어요. 두고 봐야 하는 것 같아요. 2005년에 미국 로봇 제조사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로봇 강아지의 성능을 보여 주겠다며 발로 걷어찼는데 로봇 학대 이슈로 부상한 적이 있었어요. CNN 기사에서 ‘그 나라의 수준을 정확히 알려면 그 나라에서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지 확인하라’는 간디의 말을 인용했죠. 그게 로봇에도 적용된다는 뜻이에요.
G : 로봇도 동물만큼의 존재가 되는 거군요.
A : 로봇권 지지의 기저에는 이런 게 있대요. 로봇은 이미 인간보다 똑똑하기 때문에 그대로 방치하면 로봇이 인간을 잠식할 수 있다, 그래서 로봇권이란 걸 부여해 ‘너희는 이만큼의 의식 수준을 가진 존재들이야’라는 일종의 복종의 틀을 제시해줘야 한다는 거예요. 인간이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 인간 중심적 사고가 바탕에 있는 거죠.
C : 황교익이 예전에 가축들에게 이름을 붙여선 안 된다는 글을 썼어요. 이름을 붙인 존재는 교감의 대상이 된다고. 그래서 도축업자들은 어두운 곳에서 도살하고, 그 장면을 절대 공개하지도 않는대요. 잔인한 장면이라는 걸 넘어서서 동물들도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사람이 의식하게 된다는 거죠. 한 마디로 동물과 공감이 형성되는 거예요. 그들의 아픔을 우리가 느끼고요. 아니면 그들이 아플 거라 짐작하고, 그 아픔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그럼 소비가 일어나지 않겠죠. 그렇게 따져 보니까 공감이란 것이 시대적으로 확장되고 발전해서 로봇까지 그 대상이 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채식주의가 나날이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느낌이랄까요.
G : 반인반기계 같은, 로봇과 인간 생체가 섞이는 날도 올까요?
A : 로봇권, 로봇과의 공생은 무시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일 것 같아요. 인간은 따라하는 존재잖아요. 기술이든 사상이든 새로운 것을 좇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하고, 인류 전체가 거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봐요. 새로운 것을 열망하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고, 미디어도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나듯 말이에요. 우리는 점진적으로 인공지능이 왜 좋은지, 왜 이런 방식으로 인공지능을 이용해야 하는지 수긍할 만한 논리를 만들고 있을 거예요. 세상이 발달해 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게 되겠죠. 역사를 돌아보면 전환기마다 반대와 혁명이 공존했어요. 결국 어떤 식으로든 변화했고요. ‘로봇과의 공존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라는 논리가 완벽히 차단되지 못하는 시점에 온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우리는 기계 인간이 되어 있을지도 몰라요. (웃음)
C : 돈 있는 자들만 기계 인간이 되어서 천수를 누릴 수도 있고, 혹은 정말 매트릭스 같은 세상에서 살 수도 있고.
A :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와 인간의 비율이 이 정도로 유지된다면 그건 자연 덕분일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로봇을 개발하는 이유도 더 효율적이고 편안하고 오류가 없는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잖아요. 우리는 하루하루를 역사상 가장 고도화된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피로감을 느껴요.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피로감이죠.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찾는 곳이 바로 자연이에요.
G : 자연마저 만들 수 있다면요? 그거라고 안 될 거 없죠.
A : 가상 세계가 있을 수 있겠다! 지금의 지구를 보전하면서 가상 세계에 똑같은 지구를 구현할 수 있겠네요. 그곳의 자연에서 막 뛰어놀고.
C : 아니면 돈이 안 드는 로봇들이 우리 대신 연구를 하고 있을 수 있고.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의 사이버 세상처럼 우리의 실체가 아닌 아바타가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할 수도 있고.
G : 그런데 늑대 소년 말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아시나요?
C : 교육 전문가들이 인간의 습성을 가르치려고 노력했는데 실패했대요. 적응하지 못하고,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사망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