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생명 연장에 성공하였습니다

박준 시인의 산문을 읽고 후배의 편지를 떠올리다

by 아비

May, 2021


회사 후배 Y를 만나 점심을 먹었다. Y가 회사에 신입으로 입사해 처음으로 배정받은 프로그램이 내가 연출을 맡은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서너 개의 프로그램을 쭉 같이 해왔던 터라 남들보다 더 각별히 생각하는 후배다. 몇 년이 흘렀다고 이 친구도 자신만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연차가 되었고 이전에는 업무상 보다 엄격하게 대해야만 했다면 이제는 회사에서의 내 처지를 제법 이해해 줄 수 있는 동무 같은 생각이 들어 제법 속 마음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오늘도 어김없이 후배에게 지난 촬영장에서의 다사다난했던 에피소드를 풀어내며 넋두리를 했다. 요즘 툭하면 내뱉는 말 중 하나가 ‘PD 못해먹겠다’인데(후배에게 해도 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마무리는 ‘퇴사 각’으로 향해있었다. 먼저 밥을 먹자고 요청한 사람은 정작 Y였다. 아마 그도 나에게 무언가 하소연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였겠지만 나 혼자 떠드느라 후배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한 것 같아 이제야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의 이야기는 굵직하게는 새로 배정받은 프로그램에서의 근황과 함께 비록 힘든 부분은 있지만 잘 적응해가고 있다는 결론이었다. 여기에 하지 못 한 말이 더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를 위로해 주고자 만남을 청했던 걸까.


생명 연장에 도움을 받은 책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떠한 양식의 삶이 옳은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 편지는 분노나 미움보다는 애정과 배려에 더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지난주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박준 시인이 출연해 이슈가 됐는데 이 참에 책장에 고이 모셔둔 박준 시인의 산문집을 꺼내 읽어보았다. 그중 ‘편지’라는 글을 읽다 몇 년 전 Y가 써준 편지가 생각났다.(편지를 주고받지 않는 요즘 세상에 내 생일마다 선물과 함께 편지를 써주는 고마운 후배다.) 3년 전 <캐스팅 콜>이라는 뮤지컬 오디션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때 받은 편지로 기억한다. 오디션 장르를 제작해 본 경험이 없던 터라 부침이 많았다. 다채로운 수많은 힘듦(?!) 중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나로 인해 스태프와 출연자가 생고생을 하는 현장을 볼 때였다. 물론 모든 문제가 다 내 탓은 아니다. 하지만 또 모든 게 내 탓이기도 하다. 부족한 예산, 빠듯한 일정, 어느 하나 핑계가 안 될 이유가 없는 것 투성이지만 이 모든 일들은 결국 나의 판단,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일이었기에 결국 다 내 탓인 셈이다. 연출의 무게가 가장 무겁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가 이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이 일을 더 해도 되는 건지 복잡한 감정이 들면서 많이 나약해지기도 했던 때다. 그러고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오늘 점심에도, 3년 전에도,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 질문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된다. 그런 나에게 Y는 ‘선배는 좋은 사람이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애정 어린 편지를 써주었다. 편지를 읽으며 왈칵 눈물이 쏟아졌던 것 같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큰 위로를 받았던 순간이다.


오늘도 내 얘기에 귀 기울여주고 응원해 주는 후배에게 위로를 받고,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라는 작가의 글에 다시 한번 위로를 받으니 이 일을 더 버텨낼 수 있는 핑곗거리를 하나 더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