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aleo - Basilicata on my mind
그래서 삶이 대체 무엇일까? 세상 사람 대부분이 먹고사는 궁리에 빠져 있는데 이런 걸 궁금해하는 인간들이라면, 높은 확률로 바보일 가능성이 높다.
나 역시 그 바보 중에 하나고, 저 질문에 가장 침잠해 있던 건 스물넷 언저리였다. 졸업반이 된 동기들은 각자 임고 준비나 취업 준비에 한참 매진하고 있었는데 나만 엉망인 채 그 자리였다. 도대체 삶이 뭐길래 이렇게 버텨가면서 살아야 하는 거지? 봉합하지 못한 지난 상처와, 새롭게 마주해야 했던 인생의 불온함에 매일매일 고통받고 있었다.
그 옆엔 두 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인생의 불온함은 훌륭한 안주가 되어주었고, 늘 취해있던 우리는 언제나 셋이 기본이었다. 서로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건 (적어도 들어줄 수 있는 건) 서로 밖에 없다는 그 이상하고도 외로웠던 연대가, 서로가 서로의 삶에 함부로 침범하도록 했다. 도저히 분리가 안 되는 지경으로 상처를 주고받는 몇 개월을 보내다 깨달았다. 이 친구를 떠나보내야 하는 시간이 왔다는 걸.
그 시간들을 견디게 해 준 친구를 떠나보내야만 다시 견딜 수 있다는 삶의 아이러니. 이 친구를 놓으면 겨우 위태롭게나마 유지하고 있는 균형마저 깨지는 게 아닐까 몹시 불안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시간을 통과할 수 있었던 건, 삶이 무엇일까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하던 한 영화였다.
간간이 밴드 활동을 지속해오던 주인공들은, 어느 여름날 10년 만에 밴드의 재결성을 다짐한다. 이탈리아 남부의 음악 페스티벌인 '스칸자노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눈 앞에 보이던 풍력발전기를 밴드의 이름으로 하고, 투어를 계획하는 그들.
바실 리타가 해안선을 기점으로 스칸자노까지, 차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그곳을 그들은 10일간 횡단하며 가기로 결심한다. 여정에는 여러 원칙이 세워진다. 두 발로만 걸어갈 것, 공연과 여정에 필요한 짐은 당나귀와 수레가, 비상시를 제외하면 핸드폰은 사용이 안되고 음식도 식당에서의 매식은 금물. 왜 이런 바보 같은 여행을 시작하는지 궁금해질 때쯤, 영화는 아주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그렇게 삶이란 짧은 여행을 길게 만들기 위해 (?) 두 시간의 여정을 열흘로 만든 이들은 바로 그 여정의 한가운데서 노래를 들려주며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삶의 어떤 의미들을 짚어내게 된다. 가장 공명을 울렸던 건 결혼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밴드의 여정에 함께할 결심을 하는 마리아의 대사이다.
“카페에서 일하다 보면 노인네들 얘길 듣게 돼요. 보통 날씨 얘기나 젊은 시절 얘기죠. 사소한 것 하나하나 다 기억한다니까요. 날씨 얘기할 때완 달리 젊은 시절 얘기할 땐 눈이 반짝여요. 나도 늙으면 손자에게 옛날 얘기를 해주겠죠. 바실리카타를 횡단하던 남자들 얘기 같은 거요. 끝까지 함께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요.”
서로에게 반짝이는 순간들을 내어준 뒤 마리아와 밴드의 짧은 만남은 끝이 난다. 밴드는 스칸자노를 향한 자신들의 길을 계속 가고, 도망치듯 떠나왔던 마리아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남은 삶을 살아간다.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그 안타까움의 마음을 조용히 간직한 채.
우리 모두 때때로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된다. 나에겐 그 친구가 그랬다. 하지만 세상에 수만 가지의 길이 있고 우리는 가야 하는 곳이 달라 더 이상은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다음 교차로에서 그 친구와 헤어졌다.
그렇게 각자의 길을 떠나도 충분히 삶은 살아질 수 있다는 걸 마음 아프게 배웠다. 그렇게 그 친구를 '시절 인연'으로 명명하고 떠나올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가닿을 수 없는, 그 시절의 우리들.
우리는 모두 여행자다. 그것도 삶이라는, 너무 짧은 여행을 하는 중이다. 이 여행을 길게 만드는 건 각자의 선택이다.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 이 여행에는 예기치 않은 고통과 기대하지 않은 외로움이 있을 거다. 아주 잠깐의 반짝이는 순간들이 무색하게 상당수는 그저 그런 날들일 테고, 이 여행이 길어질수록 의미 없이 힘들기만 한 날들은 아마도 계속되겠지. 그런 어느 날 아침, 머릿속에는 어떤 한 질문이 떠오르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그렇다면, 내 답은 "삶이라는 짧은 여행을 길게 만드는 중." 우리는 각자의 여로를 걷다 우연히 교차로에서 만났다. 손을 맞잡고 여정을 함께 하기로 다짐한다. 이왕이면 길게 길게, 그래서 조금이라도 반짝이는 순간을 더 자주 나누자고. 대신 그저 그런 날의 답답함까지도 모두 여정의 한 부분임을 받아들이고 함께 맞잡고 걸어 나가자고.
(2018년에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