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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식 Jan 24. 2021

연남동 시절을 그리워하며 떠나는 짧은 여행

The proclaimers - I'm gonna be

연남동 주민 시절, 길을 헤매는 외국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것도 마치 연출된 장면처럼 골목골목마다 길을 헤매는 각기 다른 인종의 사람들을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만식 만두에 소주 한 잔 하려는 마음이 아니고서야 연남동을 부러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금 연남동을 채우고 있는 줄 서서 먹는 존맛탱 맛집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분위기 갑 와인바 대신, 비싼 홍대나 합정의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떠밀려 온 작은 카페와 소품점, 선술집 등이 있었다.


대체로 가게들의 개성은 매우 강했고, 슬프게도 고객은  부족했다. “다음  월세를   있을까?” 사장님들의 주된 고민이고, “다음 달에도 여기서     있을까?” 고객들의 주된 고민이던 . 아무튼 각자 자기만의 주장을 하는 가게들이 어우러져 동네는 어떤 특정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공간에 대한 동네 주민들의 애정 덕분에 가게들도 어찌어찌 달을 넘기며 운영되고 있었다.  역시 동네 주민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도장깨기 하듯 나만의 작은 공간들을 만들고자 애썼고, 단골이  몇몇 가게에서 이야기로 가득  새벽을 보내는 것이  당시 가장  낙이기도 했다.


예원과 살던 집 1층에 있던 제목이 마음에 들었던 가게. 처음 맛본 가지튀김의 충격을 잊기 어려운 구 하하의 외관. (출처: http://egloos.zum.com/redfish)


그런 가게들 사이사이, 백패커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고 소박한 게스트하우스들이 있었다. 1층 라운지에서 맥북을 켜고 심드렁히 개인 작업을 하는 게스트하우스의 사장과, 그 옆에서 잼 바른 토스트를 먹으며 오늘 하루의 행선지들을 짚어보는 여행객들.


보통 게스트하우스들은 대부분 골목 구석구석, 로컬들도  번에 찾기는 어려운 곳에 위치해있었다. 핸드북 크기의 여행 책자 혹은 스마트폰을 들고, 인간 나침반이라도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방향을 찾는 혼란스러운 표정의 외국인들.


어쩐지 측은한 마음이 들어 약속을 미루고, 하던 일을 멈추고, 심지어는  베란다에서 한참을 지켜보다가 내려와  찾기를 도와주곤 했다. 흔히 주고받는, 어디에서 왔니,  왔니, 한국이 너의 여행지   번째 나라니, 그다음엔 어디를  거니와 같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도착해있던 ‘Love Guest House’ 같은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그들의 숙소.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언제 그렇게 길을 헤매고 다녔냐는 듯 여유로운 모습의 그들을 단골 카페 앞에서 마주치곤 했다. 테이크 아웃한 커피를 받아 미소를 지으며 짧게 하이, 하고 아는 길이라도 가는 것처럼 사라지던 모습.


유유히 사라지는 그 뒷모습에 황당한 웃음을 지면서도 계속해서 길 찾기를 도왔던 건, 일종의 보험금을 지불하는 행위였다. 그 언젠가에 이방인이 되어 헤매게 될 미래의 나를 위한 보험.


그 동네에 산다는 건,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과 같았다. 어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백팩 하나 메고 금방 떠날 수 있는 것. 그러니까, 무엇에도 기대지 않은 마음과 가벼운 삶.


2013년 태국 배낭 여행. 순서대로 꼬창, 치앙마이, 빠이


이제와 돌아보면, 작은 상점들과 게스트하우스로 채워져 있던  거리들은 우리가 좋아하던 어떤 여행지들의 느낌과 닮아 있었다. 여행자와 로컬이 적당히 섞여 있던 여행지 특유의 느낌을 동네 곳곳에서 찾아볼  있었다. 100가지의 다국 음식을 파는 ‘세계 요리 전문점이라던가, 뜬금없언어 교환 모임을 최하는 카페, 순대 국밥집에서 발견되는 엉터리 번역의 잉글리시 메뉴 같은 것들.


꾸준한 규모로 유입되는 이방인들 덕분에 동네 규모에 비해 다소 과도하게 활기찬 면이 있지만, 나름의 고유한 질서를 가진 로컬들 덕분에 동네 특유의 색을 유지하는 그런  말이다.


집 앞 벚꽃길에 이알 커피 문 채로 책을 읽고 있으면 세탁소 아주머니가 돗자리 날아간다며 벽돌을 가져다 주시곤 했다.


그때의 나는 사랑스러운 이 동네를 떠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일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동네는 빨리 변했고 높아져가는 월세 부담에 근처 동네로 이사 오게 되었다.


부동산의 계략 때문에 연남동이 망했다 농담 삼아 욕하곤 하지만 어쩌면 변한 건 다름 아닌 나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의 형편없음에 관대해지니 자꾸 다른 것에 기대고 싶어 지고, 일상에서 모욕을 주고받으며 일하다 보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삶이 무거워진 느낌. 그러니까, 지금 무지막지하게 헤매고 있다는 얘기다. 지질했던 20대 중반과 너무 빠르게 단절된 채 사회라는 곳에 던져진 이방인.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worng place에 와있다는 감각.


그래서 짧은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여행지의 밤에 갑작스레 찾아온 외로움에 사무쳐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그립고, 살면서 다시 만날 일이 거의 없을 사람들과 나누는 순수하고 진실된 마음들이 그립다. 물론, 돌아온 뒤에도 여전히 헤맬 것 같지만 적어도 떠나는 마음만은 가볍고 싶다. 그 마음을 북돋아줄 한 곡의 노래.


(2018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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