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다는 증거
오늘도 열 시에 퇴근할 거 같은데?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친구의 출근시간은 8시 반. 집과 직장은 한 시간 거리다. 집에 도착하면 열한 시가 될 터. 씻고 겨우 잠에 들면 열두 시다. 다음날도 여섯 시에 몸을 일으켜 다시 통근버스에 몸을 싣고 출근을 할 거다.
나와 다른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친구여서인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와 닿는다. 지금쯤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남일 같지 않은 것이 나도 늦은 퇴근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덕분에 나의 허리는 두 시간을 앉아있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나의 동기들 중 두 명이나 디스크에 문제가 생겼다. 다음은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겨웠다. 최근에는 특히 노력하는 것이 지겨워졌다. 상사가 원하는 정도의 결과물을 내기위해서는 회사와 계약한 8시간의 근무시간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남아서 일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계약된 시간에 집에가는건데도 정시퇴근이라고 부르는 것도 싫었다. 그냥 모든 것이 과하다고 생각되면서 일이 지겨워졌다.
회사는 그런 곳이다. 내가 열심히 하는 것과 결과는 철저히 분리된다. 초라한 결과물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해 내가 수십 번 고민했다는 것을 스스로가 기억한다. 결과물이 이게 뭐냐고 혼날 때. 여기가 사랑 가득한 가정은 아니지만 과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말할 때는 더욱 스스로가, 특히 노력하는 스스로가 지겨워지는 것이다. 어차피 이렇게 되는 거 노력이나 하지말걸 이라고 후회하고 만다.
이렇게 생각하기까지 이미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지쳐왔다. 노력이라도 안 했으면 지칠 일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든 해내 보겠다고 샛별이 반짝일 때 퇴근했던 모습을 되돌아보니 스스로가 새삼 바보 같아 보인다.
누군가가 일을 즐기라 말했지만, 미술이나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의 작업물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잘 그린 미술작품을 보고 웃는 사람은 있지만 잘 정리된 엑셀을 보면서 웃는 사람은 없으니까. 의무감으로 일하는 것도 타고난 운명이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