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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밥풀꽃

by 쓸쓸

십여 년 전, 건대 쪽에 자주 가던 북카페가 있었다.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라 일행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눈치가 보이던 곳. 나는 주로 책을 가져가 공부를 했는데, 그날따라 심심했던 건지 서가쪽으로 가서 꽂혀있는 책들을 눈으로 훑었다.


이럴 수가. 어릴 때 어머니가 사주신 책이, 절판된 그 책이 깨끗한 상태로 꽂혀있었다. 소심했던 나는, 그 책을 주인장한테 들고 가 용기를 내서 요청했다. 혹시 책 바꿀 수 있냐고. 이 책이 너무 갖고 싶다고. 주인장은 흔쾌히 수락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간과 구간, 새 책같은 상태의 두 권을 가져와 드렸다. 교환받은 책의 제목은 『꽃,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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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어머니 손을 잡고 서점에 가서 둘러보다 내가 고른 책이었고,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괴롭히는 내용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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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를 적어보자면, 효성이 지극한 아들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일을 하러 떠났다. 아들의 사랑을 뺏겼다고 생각한 시어머니는 아들이 없는 동안 며느리를 괴롭혔고, 며느리는 결국 죽었다. 입가에 밥풀이 붙어있던 채로 숨을 거둔 며느리는 땅에 묻혔는데, 그 자리에 하얀 밥알을 문 것 같은 꽃이 피어서 그 꽃을 '며느리밥풀꽃'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 책에 소개된 수많은 꽃들은 몰라도 '며느리밥풀꽃'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작화 덕분이었을까. 지금 봐도 시어머니의 잔인한 표정이 보이고 며느리의 괴로워하는 감정이 느껴진다.


아주 소중한 책이다. 절판이 되어 구하기가 어려운 데다가 추억까지 있으니까. 중고서점에 절대 팔지 않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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