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체를 놓치다

찍으면 안 되겠지

by 쓸쓸

몇 주 전, 홍대에 갔을 때 이야기다. 사진기를 들어 꽃과 나무를 찍으며 레드로드를 걷던 중 저 멀리 벤치에 앉아있던 사람을 봤다. 검고 긴 생머리에 하얀 얼굴을 가진, 한쪽 팔로 벤치에 기대 멍하게 앉아있는 여자였다. 나는 주로 풍경 사진을 찍기 때문에 당황해하며 서성거렸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카메라에 담아주고 싶어서.


몇 분이나 고민을 했다. 사진을 먼저 찍고 결과물을 보여줄까, 아니면 찍어도 될지 물어보는 일이 우선일까. 용기가 없는 나는 셔터를 누르지 않고 말도 걸지 않는 쪽을 택했다. 낯선 타인의 카메라에 자신이 담겼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기분 나쁠 것 같아서. 내가 전문가는 아니라 생각하니 잘 찍을 자신도 없어서. 나는 아쉬운 마음을 한가득 안고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목적지로 향했다. 두 발로 땅을 꾹 꾹 밟으며.


요즘도 풍경만 찍는다. 짝꿍은 사진 찍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강아지는 가만히 있지 않아 내가 원하는 표정을 찍기 어렵다. 길 가다 우연히 뷰파인더에 담고 싶은 낯선 인물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언젠가 또 나타나려나? 그때는 용기 내서 말을 걸 수 있으려나? 그때는 셔터를 누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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