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마무리

놓아주기

by 쓸쓸

ISBN 발급을 받고 30일 이내에 국립중앙도서관에 2부를 납본해야 하는데, 두 번째 받은 샘플책 검토를 미루고 또 미뤘다. 부끄러워서일까. 출판 과정을 알려주신 강사님은 말했다. 60~70% 정도 만족하면 된다고. 나머지는 다음 책에 쏟으라고. 시작은 했는데, 계속 뭔가를 하긴 하는데, 마무리를 짓기 어렵다. 버겁다.


그래도 해야지. 괜히 일주일을 놀다가, 미루고 미루다 더는 안 될 것 같아 샘플책을 펼치고 집중력을 발휘했다. 공부할 때 듣는 ASMR을 켜놓고. 한 시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수정할 부분 확인이 끝났다. 그다음 랩탑을 켜고 브런치에 접속해 초고를 여럿 썼다. 바로 인디자인을 편집을 해야 하는데도 또 미룬 거다.


어찌어찌 인디자인을 열었다. 표지와 내지를 조금씩 수정하는데 프로그램 하단에 초록불이 켜져 있고 "No Errors"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니 소화제를 먹은 것처럼 속이 편했다. 드디어 마지막 편집. 이제 끝인데 왜 이렇게 하기 싫을까?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끝날 작업을 왜 미루고 있지? 책을 만들기 싫은 건가. 그건 아닌데. 내 손을 떠나보내기 싫은 건가. 뭐가 불안한 거지?


사실 책이 나온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서점에 입고되어야 한다. 서점에서 책이 판매가 되어 정산을 하는 것은 다음 일이고 입고가 먼저다. 한 출판사 대표로부터 들은 얘기다. 어떤 작가가 서점에 갔는데 자신의 책이 없다며 출판사에 물어봤다고 했다. 왜 이 서점에는 내 책이 없냐고. 나는 다행히 작가로서의 환상은 없다. 하지만 지금 내 마음이 불안한 이유는 서점에서 내 책을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아 그런 듯하다. 입고 메일을 보내도 한참을 지나 거절 메일을 받는다면 많이 슬플까? 씁쓸하긴 해도, 쓰라린 마음으로도 다음 책을 준비하겠지. 묵묵히. 그러니 첫 책도 끝내야지. 제발!


생뚱하게 보험설계사에 기웃거리던 일은 말끔히 정리했지만 다른 일을 해보려 한다. 출판사 대표로서 일요일에도 일을 하며 정서적인 부분은 나름 해결되고 있지만 경제적인 이슈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일을 벌이기에 앞서 일단 출간부터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괜히 미루고 싶은 마음에 일주일을 빈둥거렸다. 아니다. 빈둥거린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빨래도 했고, 청소도 했고, 산책도 했으며, 사진도 찍고 놀러 다니기도 했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영화도 봤다. 단지 출판사 일만 게을리한 것일 뿐.


다행히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구했다. 마지막 직장은 출퇴근 왕복 3시간 정도 걸렸는데 그 때문에 더욱 지쳐서인지 가까운 곳을 선호하게 되었다가 그마저도 힘들어 집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하루 종일 사람들과 부대끼는 게 버겁기도 하고, 강아지도 돌봐야 한다. 이런저런 상황을 따져봤을 때 집에 있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어쨌든, 인쇄소에 최종파일을 보내야 한다. 드디어 최종. 진짜 최종. 이제 정말 내 손을 떠나는 것이다. 초판이 인쇄되면 배송을 받지 않고 직접 찾으러 가기로 했다. 박스 안에서 책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다 파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상처가 있는 책은 판매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반품 클레임은 날 힘들게 할 것이 분명하다.


보냈다. PDF 파일을 드디어. 메일로 보냈다. 이제 내 손을 떠났다. 내 첫 책의 초판본들아, 곧 만나자. 오랜만에 파주에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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