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대표가 보험설계사에 한눈팔기
또 한 주가 지났다.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갈까. 정신 차리고 살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이 허무하게 지나가버린다.
지난주에도 해야 할 일들을 대략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렸다. 집중하니 목록의 3분의 1을 반나절만에 끝낼 수 있었다. ISBN 발급을 신청하고, 샘플책에서 수정할 문장을 인디자인으로 작업했다. 인쇄소에 파일 보냈다. ISBN은 하루 만에 발급이 됐고, 2차로 요청한 샘플책도 며칠 내로 나왔다. 내가 노력하면 일은 진행되고 발자취가 남는다. 이렇게 조금이나마 출판사의 일을 했다. 역시, 나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그러다 슬슬 돈 걱정이 밀려왔다. 이제 막 시작한 출판사로는 바로 수익을 내기 어렵고 통장 잔고도 다시 채우 싶었다. 그래서 휴대폰에 설치해 놓은 구직 앱에 들어가 공고를 훑어봤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정착지원금'. 첫 달에 몇백만 원을 준다는 문구였다. 몇 번을 보고 또 보다가 지원했다. 근무시간도 짧다고 하니 출판사 일과 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출판사만으로는 미래의 생활까지 책임지기 어렵다고 생각했으니까.
집에서 멀지 않은 회사로 가 면접을 봤다. 별다른 질문도 없이 금세 끝났고, 며칠 뒤 합격 연락이 왔다. 설계사 시험에 붙으면 8월에 정착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욕심이 생겼다. 사무실을 둘러보니 근무 환경도 나쁘지 않아 보였고 나만 잘하면 짧은 투자 시간으로도 괜찮은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사무실에서 받은 모의고사를 풀어봤다. 이미 합격 수준 점수가 나왔다. 조금 놀랐다. 신기했다.
다음날, 한번 더 사무실에 갔다. 합격 비결, 설계사 시험 날짜, 장소 등 내가 해야 할 것들에 대해 설명을 들으러. 그리고 며칠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책 읽기, 글쓰기, 사진 찍기보다 보험설계사 시험 합격이 우선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은 불안했다. 혼자 운영하는 출판사라도 탄탄하게 다지려 관련 공부를 해야 하는데 갑자기 보험설계사 공부를 한다고? 이래도 되나 싶었다. 하지만 이 고비만 지나면 다시 출판사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다 할 수 있다고. 하기로 마음먹고 실천하면 뭐든 다.
요즘은 검색만 하면 웬만한 정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보험설계사에 대해 검색하며 공부하니 궁금증이 하나씩 생겼다. 고객이 매달 내는 보험료가 5만 원이면 나에게 들어오는 돈은 얼마일까? 한 달에 얼마를 가입시켜야 200은 벌 수 있을까? 보험사마다 다르겠지만 몇십에서 몇백 배까지 수당을 준다는 정보들이 보였다. 한번 계산을 해 봤다. 보험료 10배를 수당으로 받는다고 가정했다. 한 주에 5만 원, 한 달 4주에 20만 원이면 한 달에 200은 벌 수 있는 거 아닌가? 근데 말이 쉽지. 못하는 사람은 진짜 못한다는데 나는 잘할 수 있을까? 정말 그렇게 될까? 일단 시험만 합격하면 사무실에서 알려줄 텐데도 질문이 멈추질 않았다.
그러다 '환수'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고객이 해지 하면 이미 받은 수당은 다시 돌려줘야 하는 것. 계약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않으면 다시 뱉어내야 하기 때문에 쉽게 볼 문제는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번 돈을 통장에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건데. 그럴 거면 일을 왜 해야 하지? 시간 낭비만 하고 보험사 배만 불려주는 것 아닌가?
대리점의 장이 신입 설계사를 데려다가 지인 영업을 시킨다는 글도 봤고, 환수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 다들 대놓고 말을 하지 못한다는 댓글도 봤다. 내가 보험설계사 일을 하더라도 주위 사람들에게 가입을 권유하고 싶지도 않았다. 일이 정말 안 풀릴 때 내가 가입해서 실적을 채우는 일이 있어도 지인 영업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가입시킬 사람도 없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환수할 돈이 없어서 신용불량자가 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가 있다는 글을 본 순간이었다. 물론 일을 잘하는 사람은 부족함 없이 살겠지만 나는 자신 없었다. 그저 투자한 시간 대비 좀 더 돈을 벌고 싶었던 건데 그것도 욕심이었고 순간 돈에 눈이 멀었던 것이다. 보험 영업의 어두운 부분들을 알고 나니 허무함이 밀려왔다.
보험설계사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을 냈다. 직업이 나쁘다기보다, 그 시스템을 스스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출판사 일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나는 왜 엉뚱한 길을 헤맸던 걸까.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언제까지 방황하는지, 언제 철이 드는지, 언제 정신을 차릴 건지 답답한 마음이었다. 나는 며칠 만에 왜 그렇게 빠져들었던 건지 돌아봤다. 그저 짝꿍한테 맛있는 음식과 비싼 게임기를 사주고 싶었다. 지금도 해줄 수 있지만 저축도 더 하고 싶었다. 노후 준비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엄마께 용돈도 넉넉히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이것은 나의 바람이다. 내가 주는 돈과 선물을 받고 행복해하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던 거다. 돈을 많이 벌어오라고 뭐라 하는 이도 없다. 경제적 능력이 있든 없든 나는 이미 사랑받는 사람이다. 그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이렇게 에피소드가 또 하나 생겼다. 짝꿍은 괜찮다며 내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미리 알아서 다행이라고 말하며.
나는 기운을 내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해 먹었다. 양배추, 양파, 대파, 깻잎, 쌀떡을 넣고 매콤한 닭갈비를 만들어 먹었다.
시원하게 세수도 하고, 화장품과 핸드크림을 야무지게 발랐다.
잠시 한눈을 팔았지만, 다시 가던 길을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