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류

by 김한슬



첫 만남에 유독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거나 대화를 많이 나눠서도 아니다. 그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확신 같은 것이 스친다. 아 이 사람과는 괜찮은 친구가 되겠구나. 근거 없는 예감인데도 이상하게 흔들리지 않는다. 나 스스로도 그 감각이 어디서 오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로 그저 받아들이는 쪽에 가깝다.

처음엔 그런 감정이 단순한 호감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첫인상이 좋을 수 있고 그건 금세 바뀌는 것일 테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관계가 쌓이면서 알게 됐다. 그 순간의 느낌이 꽤 정확하다는 걸. 그렇게 마음이 먼저 반응했던 사람들과는 결국 오래 남았다. 자주 보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았고 말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서로의 삶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도 관계 자체는 이상하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 예감은 상대를 판단하는 기준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의 상태에 가까웠던 것 같다. 경계가 낮아지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처음부터 나를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겠다는 느낌. 그래서인지 그 관계들은 늘 자연스러웠다. 억지로 친해질 필요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각자의 속도로 시간을 지나오다 보니 어느새 깊어져 있었다.

모든 만남이 그렇게 시작되는 건 아니다. 어떤 관계는 서서히 익숙해지고 어떤 관계는 애써 다가가야만 유지된다. 그 모든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유독 기억에 남는 관계들은 시작부터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말보다 먼저 마음이 반응했고 그 반응을 의심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만날 때 조심스러운 편이다. 쉽게 기대하지도 쉽게 단정하지도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도 가끔 아주 드물게 처음 마주친 순간에 묘하게 마음이 고개를 드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예전의 관계들이 떠오른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서로를 이해했던 순간들. 그래서 그 느낌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게 됐다.

어쩌면 사람 사이에는 설명할 수 없는 신호 같은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말이나 행동보다 먼저 오가는 어떤 기류. 나는 그걸 특별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런 감각이 있었고 그것이 내 삶에 꽤 좋은 관계들을 데려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앞으로도 눈이 마주치는 찰나에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이 온다면 아마도 또 한 번 조용히 기대해 볼 것 같다. 이번에도 오래갈 수 있겠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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