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by 김한슬



취업 준비를 오래 하다 보면 시간의 감각이 흐려진다. 하루하루는 바쁘게 흘러가는데 돌아보면 제자리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계획표는 점점 촘촘해지고 해야 할 일은 늘어나지만 마음은 자주 뒤처진다. 무엇을 더 잘해야 하는지 보다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지가 더 크게 다가온다. 그 질문이 쌓일수록 숨이 조금씩 가빠진다.

어느 순간부터는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 지치지 않는 게 목표가 되기도 한다. 계속 움직이고는 있지만 왜 이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는 흐릿한 상태로. 그럴 때는 잠깐 멈춰 서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멈춘다는 건 포기나 후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는 일에 가깝다. 내가 어떤 일에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사람인지 무엇을 할 때 마음이 덜 소모되는지 아주 기본적인 질문들을 천천히 꺼내보는 시간이다.

우리는 종종 빨리 도착하는 데만 익숙해져 있다. 남들보다 늦어졌다는 생각이 들면 속도가 전부가 된다. 하지만 삶은 출발선도 도착지도 제각각이라 누군가의 속도가 내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천천히 가는 동안에만 보이는 풍경도 분명히 있다. 깊게 고민하는 시간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지는 않지만 나중에 방향을 크게 틀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조급함은 시야를 좁히지만 여유는 생각보다 멀리까지 보게 한다.

또 한편으로는 인생이 늘 계획대로 흘러간다는 착각을 내려놓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무리 꼼꼼하게 준비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은 반드시 오고 반대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작고 이상한 기쁨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시간을 의미 있게 채우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 시간에도 사람은 충분히 살아지고 마음은 나름의 속도로 정리된다.

너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 이 말은 대충 살라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말라는 말에 가깝다. 잘 쉬는 사람만이 오래 버틴다. 그리고 오래 버틴 사람은 결국 자기만의 자리에 닿는다. 그 자리가 처음 상상했던 곳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때의 나는 그곳에서의 나를 생각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쳤다면 잠시 쉬어도 된다. 멈춰 서서 생각이 엉키는 시간을 보내도 괜찮다. 인생은 생각보다 자주 방향을 바꾸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온기를 건네준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일의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

작가의 이전글기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