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by 김한슬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마음이 아리다. 서류를 내고 결과를 기다리고 다시 지원서를 고치던 날들이 반복되던 때였다. 달력은 성실하게 넘어가는데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기분이었다. 무엇을 잘하고 싶은지 보다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지가 더 또렷해졌고 내가 고른 길이 맞는지 묻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직장이란 곳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 안에 들어가면 나는 조금 달라질 수 있는지 아니면 그대로 희미해질지 같은 생각들이 겹겹이 쌓였다.

결과는 대부분 짧았다. 고맙다는 말로 시작해 아쉽다는 말로 끝나는 문장들. 때로는 그마저도 없이 조용히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소식이 없다는 사실이 하나의 답이 되는 방식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화면을 새로고침하는 일은 습관이 되었고 나 자신을 평가표에 올려두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때의 나는 세상이 정한 기준표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회사라는 이름의 단단한 문 앞에서 누가 안이고 누가 밖인지가 너무 분명해 보이던 시절이었다.

그런 날들 사이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도착한 한 통의 메일이 있었다. 결과는 다르지 않았지만 문장의 결이 조금 달랐다. 짧은 위로와 함께 작은 상품권이 동봉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시간과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다는 표시처럼 느껴졌다. 결과와는 별개로 그 과정에 참여한 사람의 노고를 헤아리려는 태도. 그것은 합격 통지보다도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특별히 거창한 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세상이 사람을 쉽게 재단하고 빠르게 흘려보내는 구조라는 사실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의 가능성까지 축소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실패가 곧 무능을 뜻하지 않는다는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잘 들리지 않던 이야기. 그런데 그날만큼은 그 문장이 이상하리만치 또렷하게 읽혔다. 떨어졌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쪽이 조금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처음으로 취업이라는 이름의 시장 바깥에 서 있는 나를 상상해 본 것 같다. 평가받는 사람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빛을 가질 수 있는 한 사람으로. 누군가의 문장 몇 줄이 그런 틈을 만들어주었다. 그 다정함은 과하지 않았고 동정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저 한 번쯤 숨을 고르게 해주는 바람 같았다.

시간이 지나며 합격과 불합격은 결국 지나가는 과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은 이상하게도 오래 남아 있다. 누군가에게는 형식적인 절차였을지 모를 일이 나에게는 방향을 다시 잡게 해 준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언제나 친절하지는 않더라도 사람이 꼭 그렇게까지 무심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시간을 평가하는 자리에 서게 된다면 결과와 별개로 그 사람의 노력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태도를 잊지 말아야겠다고. 거창한 위로 대신 그저 당신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신호 하나쯤은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누군가의 하루를 완전히 바꿀 수는 없더라도 잠시 멈춰 숨을 고르게 하는 문장 한 줄 쯤은 남길 수 있도록. 그날 도착했던 메일처럼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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