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슨 색을 좋아해?

by 십이월에씀

먹을 것에 대한 기호를 제외하고 생각해 보면

아이에게 가장 먼저 생겨나는 취향은 색을 고르는 기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색은 아이의 옷, 이불, 장난감, 가방, 신발 등 다양한 선택을 할 때 반영이 됩니다.

내가 어떤 색을 착용하고 싶은지, 어떤 색의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핑크공주'의 시기가 왔을 때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늦바람이 무섭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 가지 색에 열정적인 그 모습이 귀엽기도 했고

또 엄마 노릇하기에 차라리 편하기도 했던 게 사실입니다.

무언가를 고를 때 분홍색을 고르면 아이가 거부할 확률이 드물었기 때문이지요.


분홍색은 아이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의 드레스색,

그 색을 지니면 나 역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분홍색 옷을 입고 역할놀이 속의 공주가 되면 아이는 아름다움과 행복을 느낍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행동을 '상징적 동일시(symbolic identification)'이라고 부른다고 해요.

아이에게는 색이 그저 색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더불어 일상 속 행복을 추구하는 자신의 욕망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핑크공주'시기에 흠뻑 빠져 지내다 보통 1, 2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아이에게 새로운 색깔이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보라색을 시작으로 노랑, 주황, 빨강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색을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 품게 되는데요.

다채로워진 색깔 못지않게 아이의 언어적, 행동적 표현들이 풍부해지고

또 그만큼 다양한 세상의 모습들을 수용해 나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은 생각에 대견하고 기특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한 번만 묻지 않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물어 옷을 사는 데 참고하기도 하고

새로운 색을 언급할 때마다 그만큼 아이의 세상이 확장되었음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최근 저희 아이는 '검은색 외투'를 사달라고 하더라고요.

검정이라면 발끝에 머무는 양말조차 싫어하던 아이가 이제는 검정이 멋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나 봅니다.

최근 독감에 걸렸다 나았는데, 아이들은 역시 아프고 나면 한 뼘씩 크는 걸까요?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검은색 외투를 고르고 골라 결제했습니다.

태어나 처음 검정을 몸에 걸친 아이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고 설레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아이는 지금, 어떤 색을 좋아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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