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이는 역할놀이를 아주 좋아합니다.
'아주'라는 단어가 부족할 정도로 좋아합니다.
저도 역할놀이를 좋아합니다.
말로 놀아주는 놀이를 좋아해서
아이가 어릴 때부터 책 읽기와 역할놀이 위주로 놀아주었어요.
역할놀이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가 만나
역할놀이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역할놀이는 '역할 정하기'로 시작됩니다.
보통 아이가 먼저 "나는 00을 할게, 엄마는 00을 해."라고 정해줍니다.
그런데 어떤 날은 자비롭게도 저에게 선택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면 저는 아이에게 묻습니다.
"어떤 역할 하고 싶어?"
* 아기/환자/학생
저희 아이는 수동적인 역할을 주로 자신의 역할로 여기고 있습니다.
가족 놀이에서는 아기를, 병원 놀이에서는 환자를, 유치원 놀이에서는 학생 역할을 합니다.
자연스레 제가 엄마/의사 선생님/유치원선생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역할을 맡고 놀이를 시작하면 아이는 저의 리드에 따라 놀이를 합니다.
* 엄마/의사/선생님
때로는 자신이 주도적으로 놀이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어른의 역할을 고르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평소보다 더 당당하고 씩씩해 보입니다.
저는 아이의 멘트에 따라 움직이고 반응을 보이면 됩니다.
아이들은 왜 어떨 땐 주도적이고, 어떨 땐 수동적인 걸까요?
저희 아이는 꽤 오래 등원거부를 했습니다.
처음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순간부터 등원거부를 하기 전까지
자신만만하고 활발하고 친구들 관계에서 주도적이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한 번 등원거부가 시작되고 나니
세상 모든 것이 불안하고 작은 변화도 두려운 아이가 되었습니다.
등원거부를 하기 전,
아이는 늘 의사 선생님이 되어 저를 치료해 주었고
엄마가 되어 싱크대 장난감 앞에 서서 요리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등원거부를 하고나서부터는
아기가 되고 싶어 하고 아파서 입원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 했고요.
수동적인 역할이 나쁘고, 주도적인 역할이 좋다는 이분법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를 통해 아이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날은 지금보다 더 어린 아기가 되어 엄마의 품 속에서 보살핌을 받고 휴식하고 싶고,
또 어떤 날은 멋진 언니, 멋진 어른이 되어 내가 생각한 일들을 해내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기도 할 겁니다.
아기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를 보며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퇴행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하고요.
하지만 아이가 하고 싶은 만큼 아기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아이가 바라는 보살핌과 휴식이 충분히 채워질 수 있도록이요.
잘 채워진 아이는 혼자서도 잘 걷고 잘 뛸 겁니다.
여러분도 아이가 아기가 되고 싶어 할 때
'얘가 왜 이러지?', '왜 안 하던 애기짓을 하고 그래.'라고 반응하기보다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엄마/아빠가 되어 아이를 품에 안고 토닥여 주세요.
그렇게 역할놀이에 몰입해 있다 보면
아기는 금세 또 지금의 아이의 모습으로 자라 있을 거예요.
조금 더 단단하고 씩씩한 모습으로요.
우리 안에도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아이,
마음 한 켠에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