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11.
나에게 언제쯤 달력상의 연휴가 진정 연휴로 다가올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도 지나가고 나니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지고, 5월의 연속된 연휴를 맞이하여, 여유로운 시간에 마음을 풀어놓고 보니 생각만 많아진다.
오늘은 누구 한사람 맘편히 만나기 쉽지 않으니, 홀로 자유 아닌 자유를 느껴보자 결심하고 나섰다.
간만에 악기를 수리하자 하였는데, 악기점은 문을 닫았고 애꿎은 주차비만 내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인사동 산책이라도 할까 하다, 에이, 혼자서 무슨, 재빠르게 돌아서는 것은, 비단 주차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종로로 차를 돌려 나오는데, 광화문 사거리에서 좌회전이 안되는 것을 깨닫는 순간, 유턴해 돌아오는 길이 익숙하여, 결국 그 건물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씨네큐브- 이전엔 한번도 가본적 없던 그곳이, 익숙해진 것은 작년부터였고, 자연스레 발걸음이 향하여 들어간 그곳에서 무표정한 매표소의 여인에게, 마지막 시간, 한장 주세요, 를 강조하여 말한 것은 스스로 외면하기를 원치 않아서였다.
얼마전 memory extinction 운운하면서 친구와 함께 왔었는데, 혼자서 오는 길이 더욱 낯설으니, 이것이 보다 강력한 memory reorganization이겠다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것도 참 유별나구나, 싶은 생각과 함께. 아, 참 그때도 그랬었지. 어쩌면 1년보다 더 오래전의 그 또한 그러했을지 모를 일이다. another memory reconsolidation.
구석에 책꽂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새로이 놓인 것인가 싶고,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책들이 여러권 꽂혀 있었다.
ipod nano를 찾아 귀에 꽂으며, 무엇을 보며 기다릴까 하다가, 신경숙의 '외딴방'이 눈에 들어왔다.
한번 읽어봐야 하는데, 하면서 기회가 닿지 않았던 그 책을 집어들고 그 아래 앉아서 첫장을 펴 드니,
장 그르니에의 단문과 함께 시작하는 16살 소녀와 커버린 작가의 이야기는, 어지러운 음악과 함께 나의 마음을 다시 가볍게 흔들기 시작했다. 양 옆에 같은 포즈로 책을 읽고 있는 이들도 그러할까.
영화상영 5분전을 알리는 목소리에 서둘러 아쉬운 책을 내려놓고 어두움 가득한 공간에 들어가니,
짧은 광고와 곧 이어 시작된 영화. 한 커플이 중간에 내 앞자리에 들어와 앉지만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시종일관 속삭임 손짓 눈짓 몸짓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듯한 커플의 실루엣은,
양옆자리 여인들 못지않게, 나에게도 영화 스크린에 집중하는데 충분히 방해 요소가 되었다.
아직 어려서이겠지, 하면서도, 결국 똑같은 연애와 사랑의 반복,에 생각이 머무르니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의 감동적 스토리를 가슴에 담은 채, 자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는 내 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또 뿌듯하기도 하고.
어제- 긴 통화와, 새 물건으로 인한 기쁨, 계속되는 대화속에 감정을 추스르면서,
또 괴로워하는 나의 마음을 모른척 하지 않아준 그들과,
한 외국인 교수와 함께 한 작은 만찬에서의 대화들 속에서,
오늘- 소박해 보이는 노벨상 수상자의, 수다스런 강연과 대화의 시간에서,
한잔의 커피와 아이스크림, 혹은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의 대화들 속에서,
짧은 안부 문자들의 주고받음 속에서,
순간순간 나의 삶의 방향을 돌아보니, 사실 내 주변엔 감사해야할 사람들 뿐이다.
마지막 통화까지 따스히 받아준 그와, 끝까지 거부한 그.
영화를 보고 혼자 돌아오는 길에,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가 크게 울리는 차안에서, 많은 생각이 오고 간다.
어쩌면 이런 연휴가 나에게 진정 연휴다운 연휴가 아닐까 싶다.
하루의 끝은 혼자서 마무리 하였지만, 다시금 나에게 부족한 면들을 깨우쳐준 내 주변의 멘토들, 그들을 생각하니 마음에 힘을 얻는다.
여유로운 연휴의 반을 보내고, 또 남은 반을 보내며 조금 더 가벼워 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