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14.
요즘은 한시간에 걸쳐 두개의 큰 고개를 넘어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
자동차 라는 것이 시간을 단축시키고 몸을 편리하게 하는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을 지닌 운송 수단이나,
차가 없이도 걸어다닐 수 있는 육체적 능력을 도태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어 걸어다니기로 결심한지 일주일이 되었다.
고개길은 대로와 맞닿아 있기에, 두번째 고개를 넘을 즈음엔, 매연으로 목이 칼칼해진다.
그쯤되면, 차라는 것이 지구상에, 적어도 인류 삶의 질에 안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걸어다니게 되면서 차로 쓱 지나쳤을 때 보지 못했던 것을 종종 보게 되는데,
예를 들면 반짝이는 아침햇살에 빛나는 아스팔트 길이라든지, 혹은 거리 구석에 피어있는 들꽃이라든지,
안에 무엇이 있을지 너무나 궁금하게 만드는 철문이라든지-
더구나, 차안에서 느끼는 주변 운전자들의 무례함에 대한 분노나 불편함 따위의 나쁜 감정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정감어린 호기심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는 재미도 있으니, 걸어서 출퇴근은 나에게 금상첨화임이 분명하다.
지난 토요일엔- 전날의 회식으로 아침에 늦게 일어나 아침 미팅을 위해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 버렸는데,
그 길에 한 조깅하는 남자를 지나치듯이 보았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닮은 그여서 깜짝 놀랐는데, 이런 나의 응시를 느꼈는지 내가 탄 택시를 돌아본 듯한 그의 얼굴은 정말 그사람인가 싶었다.
하하, 걸어갔다면 분명 정면으로 마주쳤을 텐데, 아쉽네-
두 사람은 너무나 친해서 가끔은 내가 질투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질투,까지는 아니더라도, 둘 관계의 긴 시간의 공감대로부터 비롯된 어떤 암묵적 권력 혹은 아우라에 의한 본능적 저항심리가 아니었을까.
다들 가까이 살고 있으니, 한번쯤 길에서 마주칠 법도 한데, 그런 기회는 애초에 차단된 듯 하다.
그러나, 그날, 내가 만약 걸어가고 있었다면, 분명 인사를 나누었을 법도 한데. 그렇게도 한번쯤은 물어보고 싶었던 문제들도 솔직하게 물어 볼 수 있었을 텐데.
나보다도 그 둘은 더욱 솔직한 대화를 나눴을 테니까. - 그러니까, 그때 그 일은 왜 일어난 거죠? 그 마음은 무엇인가요..?
그렇지만, 그날은 내가 걸어가지 않았고, 그 사람은 차창 밖으로 얼핏 뛰어가는 사람에 불과했으며, 결국 그런 조우 또한 일어나지 않은 현실에 불과하였다.
역할에 따른 관계 속에서, 독자적 결정으로 '분명한' 문제를 야기해 놓고도,
어떤 정확한 지침이나 앞으로의 긍정적인 방향 제시도 하지 못하고, 그저 시간이 흘러 상대의 감정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듯,
자신의 문제화된 행동을 철회하거나 굽히거나 돌아보지 않는 것은,
왜곡된 지도자의 의식구조와 같다.
자신의 자존심 때문인가? 자신의 체면 때문인가? 근시안적으로 버릴 수 없는 자신의 이익 때문인가?
혹은 책임을 지기 싫어서?
무엇이 진실를 외면케하고, 희망찬 약속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하는가?
자신의 결정이나 행동이 진심으로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진정 그 선택이 唯一無二 하다 생각하는가?
과거의 약속들과 관계 유지를 위한 책임은 모두 잊어버린 듯,
단순히 현재의 자신의 이익과 감정에만 충실한 건, 전혀 옳지 못하고, 너무나 이기적이다.
그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는가, 스스로 반성하지 못하는가.
거짓말쟁이이자, 겁쟁이.
늦은 밤 걸어오면서 다시금 억울한 현실에 눈이 아파 오더라.
끝까지 고개 두개를 넘어서 집 뒤의 뒷동산에 오르니, 쌀쌀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운다.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희망을 저버릴 수는 없다.
촛불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함께 외치는 그들이 그러하듯이.
그들이 그렇게 촛불을 들고 꽉 닫힌 문을 향해 목이 터져라 외치는 것은,
아직까지 기대의 마음을, 자신을 아끼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이 나에게 위로를 건넨다.
참으로, 그 마지막 촛불이 꺼지기 전에-
그가 다시 마음을 돌리고 자신의 왜곡된 행로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미 정해진 관계 속에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실수를 함께 반성할 수 있기를,
그럼으로 하여 고통스런 관계의 단절이 아닌, 대화와 타협을 통한 共存共榮 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