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28.
지나침은 모자람 만 못하다.
오늘은 집에 일찍 와서, 괜히 집안 청소를 했다.
그리 깔끔떠는 성격은 아닌데, 가끔 한번씩 싹 청소를 해야 마음이 가뿐하다.
이런 날은 먼지 한 톨이라도 보일라 치면 달려들어 없애는, '결벽증'에 가까운 증세를 보이며 청소를 한다.
하루 이틀 지나면 다시 생기는 집먼지인데도, 깨알만한 먼지 하나라도 눈에 뜨이는 즉시 다 없애 버려야 속이 시원한 것이다.
그동안 보기 싫었던 욕실 구석의 찌든 때도 깨끗이 없애 버렸다.
닦은 곳을 또 닦으면서 사실은 나의 마음 속 찌든 때가 같이 없어지는 기분을 느낀다.
안타까운 '자살'에 남은 자들의 슬픔이 격앙된 곳.
감정적 흥과 망이 너무나 잦아, 결국 합리적 해결점은 여전히 막연한 그곳.
아니, 합리적 해결점이란 것이 애초에 차단되어 있으니, 갇혀진 감정의 과도한 표출만이 위로가 되는 그곳.
쉽게 흥분하거나 슬퍼하거나 분노하거나.. 혹은 과도하게 기뻐하거나 즐거워하거나...
그건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감정적 표출 방식이었다.
논리 정연하고 차분하면서 냉정한 이성적 해결은,
과도한 감정적 과장에 묻혀서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건, 애초에 '논리'나 '이성'으로 해결되지 못함을 깨달은 '한풀이' 였을까.
돌아가신 그분의 삶을 생각해 보건대, 마음이 많이 아프다.
안타까움과 연민과 억울함이 가득하다.
그렇게 슬프고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어야만 하는 한국 사회라는 곳이 싫어진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현 정부의 지도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의 합리적이고도 계획적인 시도들이 국민의 감정적 흥분에 가려지는 것일까?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정책들. 소위 미래지향적인. 그 속에서 누구는 미래가 있고, 누구는 미래가 없는...
'골치아프니까, 얘기도 하지 마!'
차라리 그 말이 위안이 되는 건...
저항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음을 깨닫고는 스스로의 혀를 깨물어버리는 상황,이라는 감정적 압박에
일반 서민들이 그리 동요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놓여진 골목은 끝이 어둡고도 막혀 있는것만 같아서, 슬프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역시나 마음의 찌든 때가 아직 덜 벗겨진거 같아, 빨래까지 해야 속이 시원하겠다.
그리곤,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것 같은 나의 일들,을 하나씩 처리해 나가야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더욱 더 潔癖에 가깝게.
그것이 남겨진 자의 예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