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2009.11.16.

by 순이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최영미 산문집.

"힘들더라도 나는 모험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지금, 살아있다는 것처럼 치사하고 고귀하며 흥미로운 우연을 나는 모르므로."

1부에는 작가의 여행담이, 그리고 2부에는 문학, 미술, 영화, 등 문화 전반에 대한 작가의 사색이 담겨 있다.


1부 여행지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역시나 버클리, '버클리의 동백꽃'이라는 글이었는데,
올해 4월, 내가 이곳에 와서 한참 정착에 힘쓰고 있을 즈음에, 한국의 여성 시인들이 시낭송회를 UC 버클리 한국학 연구소에서 했다는 것은,
반갑고도 아쉬운 소식이었다. 아, 왜 그 광고를 그때 나는 보지 못하였는지, 왜 가보지 못하였는지.
이렇게 놓치는, 내 삶을 풍성하게 해 줄 수 있었을, 무수한 기회들은, 지금이나 그때나, 늘 내 주변에 가득하다.

또 한편으로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과 미술 작품들에 대한 작가의 글은, 마음을 짠하게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특히나 '반 고흐, 나처럼 불쌍한 사람'에서 작가가 고백한 반 고흐에 대한 마음, "마흔이 넘은 내게, 빈센트 반 고흐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이며, 내가 극복하고픈 순수의 표상이다." 에서는, 정말 전적으로 동감이에요, 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건 친구와 배낭여행을 하던 2000년, 반 고흐를 꼭 만나고 싶다고, 아를에 들렸다 가자고, 결국 그곳에서 나올 때 시계탑 아래에서 사진을 찍으며 느꼈던 이별의 마음과 닮아 있었기에.

이렇게 저렇게 유럽여행을 하던 그 어린 시절로부터 거의 10년이란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이때에, 가끔씩 과거를 돌아보게 해 주는 좋은 책들을 만나는 것은, 행복하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하고. 그래서 '최영미 작가의 글을 잃고 나면 짜증이 나'라고 친구에게 투덜거리면서, 책을 획 덮어 두었다. 그래도 한 구석에서 우아한 집시여인의 포즈를 하고 있는 작가의 사진이 자꾸 눈길을 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시 조금 시간이 지나 책을 펴들고 2부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을때, 아, 여기 시대의 지성인 작가 최영미가 있었구나. 예술 작품들에 대한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에는 쓸쓸하지만 정많고 의리있는 한 여인,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평범하지 않으면서도 옆집 언니같은, 자유로우면서도 엄격한 여인의 초상이 있었다.

"과거 속을 헤메는 그녀는 정처가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 데나 퍼질러 앉지 않는다. 그녀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으며, 결국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 모든 것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분석하는 자기 자신에게로."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세'에 대한 감상, 그건 충분히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사랑받지 못했으므로 청춘을 잃은 사람들, 그래서 젊은 적이 없기에 늙을 수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위로가 되면 좋겠다."


참, 이 책을 접할 수 있게 해 준 사랑스런 내 친구 커플에게 감사의 인사를 잊을 뻔 했다. 늘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친구부부, 어떻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그것도 내 인생을 두고 이루어야 할 것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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